요즘 뉴욕 와인

Written by강 은영

지난 3월 말 서울에서 두 번째 시음회를 마친 뉴욕주의 와인생산자들과 저녁을 함께했다. 봄나물전에는 뉴욕에서 온 로제와 샤르도네가, 소갈비찜에는 핑거레이크의 까베르네 프랑이 한솥밥 먹던 식구처럼 호흡을 맞췄다. 한식과 뉴욕 와인이 이렇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든 생각이다. 지난해 뉴욕와인생산자협회(New York Wine & Grape Foundation)는 서울에서 첫 시음회를 열었다.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도시의 이름을 품고 있는 변방의 와인 산지가 한국 시장 진출을 위해 마련한 첫 공식 행사. 인상적인 데뷔 무대였다. 헌데 올해 다시 돌아온 뉴욕 와인은 보다 더 선명하게 새로운 놀라움을 안겼다.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뉴욕 와인이 이렇게 좋았나’하는 반응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생산자 측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게 좋겠다. 뉴욕 와인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뉴욕주만의 정체성, 뉴욕 와인 스타일

올해 뉴욕 와인 행사에서 마스터클래스를 맡았던 크리스토퍼 베이츠(Christopher P. Bates)는 마스터 소믈리에(MS)이자, 뉴욕주 핑거레이크(Finger Lakes) 지역의 와인 생산자다. 그는 이번에 방한해서 “뉴욕 와인에 대한 열광과 관심에 압도됐다”며 들뜬 목소리였다. “소믈리에들의 지식과 열정은 놀랄 일이 아니지만 아직 한국 시장에 유통되지 않는 뉴욕 와인에 보여주는 엄청난 관심은 ‘어메이징’했다”고. 어메이징한 관심을 보인 이 중 하나는 신세계(버건디&)의 헤드 소믈리에인 김민주 소믈리에다. 그녀는 “뉴욕 와인이 스타일적으로 놀라운 정체성을 지녔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말했다. “품종이 가진 전형적인 특징을 잘 보여주면서도 구조적인 밸러스가 이상적이라 부족한 부분을 찾기 어려웠다. 놀라운 점은 극한의 건조한 기후(물 부족)와 지구온난화가 글로벌 이슈인 상황에서 뉴욕주의 와인은 어느 하나 과하지 않은 알코올에도 장기간 생장기를 거쳐야만 발전할 수 있는 좋은 향기 성분이나 뛰어난 숙성도를 지녔다는 것이다. 특히 까베르네 프랑이 보여주는 완성도는 좋은 와인이라는 단순한 평가만으로는 부족하다. 세계적인 수준이었다.”

마스터 소믈리에 크리스토퍼 베이츠(Christopher P. Bates)MS

기후를 약점이라 여길 때도 있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뉴욕주의 와인이 지금과 같은 평가를 받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캘리포니아, 워싱턴, 오리건 등 미국 와인의 성장은 서부에서 탄력을 받았다. 동부의 뉴욕주는 서부와는 사정이 달랐다. 태양과 맑은 날씨가 시그니처인 캘리포니아는 달리, 캐나다 국경과 대서양 사이에 위치한 뉴욕주는 덥고 습한 여름과 혹한의 겨울을 오가며 와인 생산에는 그닥 호의적이지 않은 날씨를 숙명으로 받았다. “예전에는 기후를 약점이라 생각했고, 이 기후 때문에 할 수 없는 것들을 애석해 했다”고 “특히 풍만하고 힘 있는 레드 와인이 유행이었던 지난 30년간은 그랬다”고 크리스토퍼가 말했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퀄리티 지향의 와인생산자들이 이 기후로 할 수 없는 것들보다는 이 기후를 통해 할 수 있는 것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지금 뉴욕주 와인의 성장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됐다. 크리스토퍼가 말을 이었다. “무엇보다 핑거레이크 지역 와인은 퀄리티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재능 있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핑거 레이크 지역에 몰려들고 있어서, 점점 더 실력 있는 와인메이커들을 마주하게 됐다. 즉 점점 더 다양한 배경과 글로벌한 경험들이 이곳 와인메이킹 신에 등장한다는 것이다. 점점 더 많은 생산자가 뉴욕주의 기후, 거의 불가항력인 이 과제를 받아들이기 시작하자 포도 재배 방식도 여기에 맞춰졌고, 더 나은 와인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와인 업계와 소비자들이 변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10년, 20년 전에는 와인의 섬세함이나 우아함은 대중적으로 인정받는 부분이 아니었다. 그러나 변화가 시작됐다. 파워, 풍만함, 응집력 등만이 와인 퀄리티의 지표가 되던 시기는 지났다. 와인업계 그리고 소비자 모두 섬세함과 우아한 스타일의 와인을 즐기기 시작했고, 핑거레이크의 와인은 그에 가장 적합한 예시다.”

핑거레이크에 있는 레드 뉴트 셀라(Red Newt Cellars)의 포도밭

“물론 나파 까베르네 소비뇽이나, 말벡, 쉬라즈 같은 와인들은 그들의 자리가 있고, 어디 가지 않을 것”이라며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우아하고 섬세한 와인 스타일에 대한 새로운 관심, 전통적으로는 부르고뉴나 바롤로, 루아르, 샴페인, 혹은 독일 와인 등이 담당했던 클래식한 영역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싶어 하는 관심들이 있다고 본다. 이런 맥락에서 신세계 와인들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와인들 말고 앞서 언급한 위대한 와인 산지들과 같은 프레임에 뉴욕 와인을 자리 잡게 하는 것이 우리의 성공을 견인하는 열쇠라고 본다. 여전히 어려움은 많다. 기후는 극단적이고 포도를 재배하는 데는 엄청난 보살핌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대량 생산자는 될 수가 없다. 앞으로도 그렇게는 못 될 것 같다. 이곳에서 값싼 와인을 생산하기는 단순히 너무 어렵고, 위험이 너무 크다.” 현재 뉴욕주 와인메이커들이 직면하고 있는 이슈에 대해서도 크리스토퍼는 같은 맥락으로 이야기했다. “과일의 섬세함을 와인에 투명하게 반영하는 것. 그래서 오크 영향이나 과일의 풍미를 가릴 우려가 있는 다른 와인메이킹적인 풍미를 줄이고 있다.” “우리의 미래는 이 지역을 이야기해 줄 와인에 달려있다. 그래서 와이너리에서 포도밭으로 초점이 이동하고 있다”는 말이 절실하게 와닿았다.

마스터 클래스에서 선보인 뉴욕 와인들

한국에서 뉴욕 와인의 시장성은

그렇다면, 한국의 수입사들은 뉴욕 와인을 어떻게 평가할까. 까브드뱅 마케팅부 이내경 차장은 크리스토퍼가 말한 뉴욕 와인이 추구하는 방향을 정확히 짚었다. “이미 잘 알려져 있고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캘리포니아와는 스타일이 차별화되고, 뉴욕의 독특한 지역적 특성을 잘 살린 와인들이 매력적이었다. 핑거레이크 지역의 리슬링과 까베르네 프랑은 구세계 스타일, 더 나아가 기후변화 이전의 와인들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매우 섬세하고 잠재력이 엄청난 와인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규모보다는 생산자의 철학과 비전이 지역 특성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 같다”는 점도 지적하면서 “아직 국내에서는 인지도나 와인스타일에 있어서 안착할 시간이 필요하지만, 시장이 성숙해지고 있는 만큼 다양한 뉴욕와인 스타일에 소비자들 또한 곧 매력을 느끼지 않을까” 기대감을 표했다.

국순당 수입주류 마케팅팀의 홍진기 팀장 역시 뉴욕 와인의 대표선수인 리슬링과 까베르네 프랑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다. “뉴욕의 리슬링은 독일이나 알자스의 것보다 좀 더 드라이한 특성을 많이 보여주고, 풍부한 미네랄 뉘앙스가 인상적이었다. 까베르네 프랑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품종인데, 기존에 다른 지역의 까베르네 프랑이 강건하고 단단한 스타일이었다면 뉴욕의 까베르네 프랑은 피노 누아나 네비올로가 떠오르는 매우 우아하면서 부드러운 스타일이라 인상 깊었다.” 시장성에 대해서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뉴욕 와인의 시장성은 아직은 높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미국 내에서도 온트레이드 위주로 판매되는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평가하면서도 와인 수입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우리 와인시장은 미국 와인에 친화적이며, 독창적인 특성이 있어서 수입을 진행해보려 한다. 점차 와인 소비에 여성들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우아한 스타일의 뉴욕 와인이 성공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한식 다이닝바 '작정'에서 열린 뉴욕 와인 디너

한식에 뉴욕 와인을 내어줄 때

아직 뉴욕 와인이 국내 유통되기 전이라 소비자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미지수이지만, 뉴욕 와인에 기대되는 점 중 하나는 한국 음식과 합이 좋다는 것이다. 크리스토퍼는 “이번에 한국을 방문하면서 뉴욕 와인들이 얼마나 한국의 전통적인 맛에 잘 스며드는지, 또 한국의 음식이 뉴욕 와인이 얼마나 잘 어우러지는지 놀랐다”고 했다. 한국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모든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는 그는 “리슬링과 김치, 피노와 삼겹살, 까베르네 프랑과 소고기, 간장게장과 샤르도네”를 언급하며 “정말 훌륭한 조합이 많았다”고 했다. 지난해 시음회를 통해 처음 뉴욕 와인을 접하고 올해 두 번째로 조우하면서, ‘지난해보다 더 뉴욕 와인이 선명하게 와 닿는 이유가 뭘까’를 생각해봤다. 그 이유 중 하나도 한식과의 매칭에 있었던 것 같은데, 크리스토퍼의 마지막 말에 더 확신을 갖게 됐다. “우리 와인들은 음식과 함께 할 때 가장 완벽한 밸런스를 보여준다. 특히 한국 전통 음식과는 잘 어울릴 것이다. 당신이 음식을 내놓으면, 나는 그에 맞는 핑거레이크의 와인을 꺼내놓을 수 있다.”

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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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공개일 : 2023년 04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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