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나파 밸리는 ‘다양성’과는 거리가 있다는 오해를 종종 받는다. 큰 범주에서 하나로 모아지는 스타일, 그러니까 잘 익은 과실미와 적절한 오크 터치로 대표되는 ‘나파 밸리 클래식’이란 게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섣부른 단정은 고정관념일 뿐. 나파 밸리 하이엔드 와이너리 퀸테사(Quintessa)만 봐도 그게 얼마나 게으른 생각인지를 알게 된다. 지난 10월 19일(목), 실시간 화상 연결을 통해 만난 퀸테사의 에스테이트 디렉터 로드리고 소토(Rodrigo Soto)는 포도밭 지도를 펼쳐 보여주며 퀸테사 포도밭의 한 블록 한 블록을 강조했다. 하나의 포도밭 안에 이토록 다양한 고도와 지질, 미세기후, 그리고 생물학적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올여름 글로벌 마켓에 출시된 퀸테사 2020 빈티지는 워낙 생산량이 적어 얼로케이션은 이미 끝난 상태다. 하지만 퀸테사 와이너리는 글로벌 마켓에서도 중요도가 높아진 한국 와인 애호가들에게 퀸테사 2020 빈티지를 소개하기 위해 온라인 테이스팅을 진행했다.
강이 흐르고 호수가 반짝이며 산이 품어주는 땅
퀸테사 와이너리는 나파 밸리의 심장부, 러더포드(Rutherford)에 자리 잡고 있다. 포도밭의 오른쪽으로는 바카 산맥(Vaca Mountain Range)의 산자락이 내려오고, 왼쪽으로는 나파 강(Napa River)이 흐르는 곳이다. 산과 강 사이에 펼쳐진 만큼 퀸테사 포도밭은 다양한 고도와 지질학적 특성을 갖는다. 포도밭의 중앙에서 빛을 반짝이는 아름다운 호수 드래곤스 레이크(Dragon’s Lake) 역시 퀸테사의 테루아를 설명하는 중요한 요소다. 하나의 에스테이트에 다양한 미세 기후와 테루아가 존재한다는 것은 와인 양조에 있어 큰 이점을 준다. 로드리고 소토는 “이 다양성을 통해 퀸테사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라며, “빈티지에 따라 각기 다른 요소들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것”을 추구한다고 설명했다.
토양 성분을 기준으로 했을 때 퀸테사 포도밭은 세 개의 파트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동쪽 언덕(Eastern Hills). 나파 밸리 남북을 잇는 주요 도로 중 하나인 실버라도 트레일(Silverado Trail)이 바카 산맥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기후적으로도 산의 영향을 뚜렷이 받는 이곳의 토양은 흰 화산토인데, 로드리고에 의하면 “퀸테사 와인의 초키한 피니쉬”가 여기에서 온다. 다음으로 퀸테사 와이너리의 상징적인 호수, 드래곤스 레이크를 둘러싼 중앙 언덕(Central Hills)이 있다. 자갈이 많은 붉은 화산토로 이루어져 있으며, 퀸테사 와인의 미네랄리티와 타닌, 구조감을 담당한다. 마지막으로 나파 강 바로 옆의 비옥한 벤치(Bench) 파트가 있다. 강의 영향을 많이 받아 토양이 풍부한 편인데, 여기서 생산된 와인은 깊으면서도 라운드한 풍미와 부드러운 타닌을 갖게 된다. 이렇게 다양한 토양 프로필을 가진 퀸테사 포도들은 블렌딩을 통해 서로 융화하고 보완하여 복합적이면서도 절제력을 갖춘 와인으로 탄생하게 된다.
바이오다이나믹 어벤저스
이번 온라인 테이스팅에서 퀸테사 와이너리의 세심함이 가장 잘 드러났던 부분은 ‘바이오다이나믹’ 농법을 설명할 때였다. 포도밭의 토양과 테루아를 와인에 온전히 전하기 위해 퀸테사는 1996년부터 바이오다이나믹 방식으로 포도밭을 관리해 왔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전체 포도밭에 동일한 바이오다이나믹 방식을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게 아니라는 점. 하나의 에스테이트이지만 총 26개의 블록으로 나뉘는 포도밭은 각 블록의 특성에 따라 맞춤형으로 바이오다이나믹 농법을 적용한다. 로드리고의 표현을 빌리자면 “테일러 팜(Tailored Farm)”인 셈이다.
포도가 자라는 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노력은 바이오다이나믹을 위한 최정예 팀을 꾸리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 지역에서 20년 이상 경력을 쌓아 왔으며 2015년 퀸테사에 합류한 와인메이커 레베카 와인버그(Rebekah Wineburg)와 21년째 퀸테사 땅을 관리해 온 빈야드 매니저 마틴 갈빈(Martin Galvin)이 그 중심에 있다. 그리고 땅에 대한 자문을 해주는 컨설턴트와 프루닝 전문가, 또 최근 <디캔터> 매거진에서 라이징 스타로 뽑힌 빈야드 전문 지질학자 브레나 퀴글리(Brenna Quigley) 등 각자 분야에서 손꼽히는 전문가들이 퀸테사와 함께한다. 지난 30년간 퀸테사 포도밭을 제대로 알기 위해 노력해 왔다는 로드리고는 “이제 이 땅의 모든 요소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라며 자부심을 보였다.
화염 속에도 꽃을 피운 퀸테사 2020
포도 수확의 기쁨을 만끽하며 축제 분위기가 감돌았어야 할 2020년 가을, 안타깝게도 캘리포니아는 화마로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8월 중순 1만 2천여 번 발생한 뇌우가 원인이 된 이 대형 산불은 캘리포니아 역사상 가장 큰 산불로 기록되었다. 탁한 연기가 대기를 뒤덮었고, 완숙을 향해 가던 포도에도 영향을 미칠 거란 우려가 불거져 나왔다. 포도에 묻어 나올지도 모를 스모키한 뉘앙스도 문제였지만, 로드리고는 “어떠한 결과물로 이어질지 모르는 불확실함, 그리고 퀄리티를 유지하지 못할 거란 두려움” 등이 몇몇 프리미엄 와이너리가 와인 생산을 포기한 이유가 됐을 거라 설명했다. 산불이 포도밭을 직접적으로 덮치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퀸테사가 와인을 만들기로 결정한 배경에는 어떤 확신이 있었을까. 로드리고는 “포도밭을 직접 소유한 에스테이트 와인”인 점을 강조했다. 포도를 여러 군데에서 구매하여 와인을 만드는 브랜드와 달리, 포도와의 관계가 하나라는 것. 생장 시즌 동안 포도가 어떻게 자라왔는지를 잘 알기 때문에 불안한 요소가 없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온화한 해로 분류되는 2020 빈티지의 포도를 수확하는 데는 3주가 채 안 걸렸다. 그 말인즉, 포도가 아주 빠른 속도로 익어갔다는 것이다. 9월 3일에 시작한 수확은 같은 달 26일에 마무리되었는데, 이는 산불이 이 지역에 도착하기 하루 전이었다. 따뜻한 기온으로 인해 블렌딩 비율도 달리했는데, 2~3%씩 블렌딩하던 메를로를 아예 빼고 까르메네르와 쁘띠 베르도의 비율을 높였다.
로드리고의 설명을 들으며 테이스팅한 퀸테사 2020 빈티지는 오픈 직후부터 화려하고 복합적인 향을 내뿜었다. 약간의 커피, 작약과 같은 만개한 꽃, 달콤한 베리류 과일과 바닐라, 섬세한 오크, 건초, 시나몬 등의 향긋한 아로마가 조화롭게 올라오고, 입 안에서는 블랙베리와 블랙 체리, 흙, 드라이 플라워, 클로브 등의 풍미가 섬세하게 펼쳐지며, 부드러우면서도 존재감 있는 타닌 텍스처와 미네랄리티가 남는 와인. 정확히 1년 전 테이스팅했던 갓 출시된 2019 빈티지가 ‘보여줄 듯 보여주지 않는 수줍음’을 담고 있었다면, 이번 2020 빈티지는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표현력’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어느 쪽이든 그 해 퀸테사 땅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우아함과 조화로움의 아름다운 표현일 것이다.
퀸테사 와이너리
▶홈페이지 quintessa.com
▶인스타그램 @quintessawinery
글 신윤정 사진·자료 제공 퀸테사 와이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