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랑 끼안티 클라시코 한 잔 하시겠습니까 : 마쩨이 끼안티 클라시코 웨비나에 부쳐

Written by: 강 은영

북반구의 수확이 끝나고 10월 중순부터 11월은 와인생산자들의 방한이 가장 잦은 시기였다. 이제는 까마득한 BC(Before Covid19) 시대의 이야기다. 팬데믹 이후 와인 시음 행사는 사라지다시피 했으나 근래에는 온라인으로 와인메이커를 연결하고 각자 집에서 와인을 시음하는 형식이 자주 보인다. 지난 10월 21일, WSA와인아카데미에서 열린 마쩨이 끼안티 클라시코 웨비나는 또 다른 좋은 전형이었다. 한국시각으로 오후 3시 반, 이탈리아에서 아침을 맞고 있는 지오반니 마쩨이(Giovanni Mazzei)가 줌으로 연결됐다. 참석자들은 한 자리씩 거리를 두고 앉아 스크린 속 그에게 손을 들어 인사했다. 행사의 골자는 마쩨이의 끼안티 클라시코 6종을 시음하는 여정이었다. 등급, 산지오베제 클론, 포도밭의 차이가 빚는 다양한 변주를 만나고, 그 변주가 하나의 흐름이 되어 끼안티 클라시코의 매력을 상기시키는 여정. 

웨비나를 진행한 지오반니 마쩨이 수출이사

끼안티 역사에서 마쩨이의 의미

마쩨이 이야기는 어디서부터 해야 할까. 1435년부터 와인 양조를 이어온 가문의 역사? 산지오베제 연구 외길인생? 세계 저명 미디어에서 받은 수상 목록(토스카나에서 수상 기록 최다 보유 와이너리다)? 어느 하나 가벼운 구석이 없다. 역사상 5백년을 이어온 왕조가 드물다 하는데, 이들의 역사는 600년이다. 좀 더 거슬러 가 보자. 1398년으로. 여기 프라토의 한 상인에게 신용장을 쓰고 있는 남자가 있다. “끼안티 와인 6배럴 값으로 3플로린 26페니 8 디나르를 피에르 디 티노 리치오에게 12월 16일 지불한다.” 공증인 세르 라포 마쩨이(Ser Lapo Mazzei)가 남긴 이 기록은 와인산지로 끼안티가 언급된 최초의 문서다. 마쩨이 와인 역사의 출발점이 되는 1435년에는 와인 명가 역사의 흔한 전환점, 결혼이 있었다. 그해 세르 라포 마쩨이의 손녀가 피에로 디 아놀로 다 폰테루톨리(Piero di Agnolo da Fonterutoli)와 결혼하면서 까스텔로 디 폰테루톨리(Castello di Fonterutoli)에서의 와인 양조 역사가 시작됐다. 그리고 지금까지 100% 가족경영을 이어가는 중. 웨비나를 진행한 수출이사 지오반니 마쩨이가 이 가문의 25대손이란 사실에서도 유구한 역사의 향기가 난다. 

까스텔로 폰테루톨리 전경

까스텔로 폰테루톨리는 끼안티 클라시코(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 주 끼안티 지역의 중심부를 이른다) 중심부에 있다. 알쓸신잡 시즌3 시청자였다면, 중세에 시간이 멈춰있는 것 같은 이 아름다운 마을이 기억에 남아있을 지도 모르겠다. 풍경은 옛 그대로라지만, 2007년 완공된 폰테루톨리 셀러는 모던의 산물이다. 가문의 일원이자 유명 건축가인 아그네스 마쩨이가 디자인 한 이 셀러는 3층 건물이지만 65%가 지하에 있고, 100% 중력을 이용한다. 면적은 2,853평 정도. 지하에는 산지오베제의 사원이라 불리는 저장고가 있다. 벽에는 자연적인 암석들이 노출되어 있는데 이 암석을 타고 흐르는 물이 와인 셀러의 습도를 맞추는 역할을 한다. 양조과정에서 포도나 머스트(must)를 젠틀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고안된 중력 시스템부터 포도밭 구획별 분리 발효, 펌핑 오버보다는 펀칭 다운 선호, 그리고 경건한 저장고까지 마쩨이가 얼마나 섬세한 와인을 추구하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2015년부터는 콘크리트 탱크 숙성을 도입했다. 콘크리트 탱크에서의 짧은 숙성은 와인을 좀 더 부드럽고 더 깔끔하게 만드는 비결이라고. 2007년은 새로운 셀러가 완성된 해이자 유기농 재배로 완전히 전환한 해이기도 하다. 수확은 100% 손으로 한다. 여기서 질문이 생겼다. 코로나 이후 세계 곳곳의 와이너리들은 수확 시즌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심지어 규모가 작은 이탈리아 와이너리들조차 기계 수확으로의 전환을 고려한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100% 손수확을 하는 마쩨이는 어떨까. 지오반니는 “이탈리아에서 인력난이 이슈인 건 맞다”고 했다. 하지만 마쩨이는 충성도가 높은 인력들을 확보하고 있어서 문제없이 수확 철을 날 수 있었다고 한다.   

폰테루톨리 셀러

끼안티 클라시코의 클래식

끼안티 클라시코에는 세 등급의 와인이 있다. 아난타(Annata, 기본급으로 레이블에는 잘 표기 되지 않는 용어다), 리제르바(Riserva) 그리고 최상급 그란 셀레지오네(Gran Selezione). 모두 산지오베제를 80% 이상 사용해야 하고, 기본급부터 차례대로 총 숙성기간이 최소 1년, 24개월, 30개월씩 요구된다. 시음 첫 와인 폰테루톨리 끼안티 클라시코(Fonterutoli Chianti Classico DOCG) 2018은 대표적인 끼안티 클라시코 와인 중 하나로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 와인이다. 첫 빈티지가 무려 1900년이었다. 2018 빈티지에는 산지오베제 90%에 말바지아 네라(Malvasia Nera)와 꼴로리뇨(Colorino)를 5%씩 블렌딩했는데, 두 마이너 품종들은 역사적으로 끼안티 끌라시코에 많이 사용했던 토착종이다. 두 번째는 세르 라포 끼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Ser Lapo Chianti Classico Riserva DOCG) 2018. 앞서 소개한 역사적 인물 세르 라포 마쩨이의 이름을 땄다. 산지오베제 90%에 메를로 10%를 섞었다. 메를로를 쓰는 이유는 뭘까? “이 지역에서 잘 자라고 산지오베제와 잘 어울리는 품종이다. 와인에 우아함을 더해주기도 하고.” 지오반니 마쩨이의 대답이다. 앞의 와인이 체리와 라즈베리 향이 화사하게 핀다면 뒤의 와인은 조금 더 짙은 과일 향이 와일드하게 느껴지고 옅게 흙 향이 퍼진다.  

3개의 떼루아 3개의 그란 셀레지오네

그란 셀레지오네는 2014년 공식 인정된 비교적 최신 등급이다. 최고 등급답게 조건은 더 까다롭다. 단일 포도원의 포도를 이용하고 앞서 언급했듯 최소 30개월 숙성해야 한다. 마쩨이는 초기 한 종의 그란 셀레지오네를 선보이다가 2017년 빈티지부터 세 가지로 확장했다. 역사적으로 마쩨이가 소유한 까스텔로 디 폰테루톨리의 포도밭들은 인접한 세 개의 끼안티 클라시코 세부지역에 걸쳐 있었기 때문에(끼안티 클라시코는 9개의 세부지역으로 나뉘고, 이 안에서는 약 250에서 600m에 이르는 고도, 미세기후, 토양의 차이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3개의 떼루아와 3개의 그란 셀레지오네’라는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3개의 떼루아는 라다 인 끼안티(Radda in Chianti)에 있는 바디올라(Badiola) 포도원, 까스텔리나 인 끼안티(Castellina in Chianti) 지역의 폰테루톨리 포도원, 까스텔누오보 베라덴가(Castelnuovo Berardenga)의 비꼬레지오(Vicoregio) 포도원이다. 각 포도원에서 100% 산지오베제로 만든 3종의 그란 셀레지오네는 포도밭은 물론 사용한 산지오베제 바이오타입 종류와 양조 방법에도 미미한 차이가 있다. 참고로 마쩨이가 클론보다 바이오타입(biotype)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산지오베제의 여러 클론과 마샬 셀렉션(massal selection: 오늘날 포도나무 클론들이 ‘nursery’라고 하는 종묘장에서 만들어진다면, 마샬 셀렉션은 ‘nursery’의 옛날 버전이라 할 수 있다. 한 지역에서 성공적으로 자란 여러 올드바인을 재식재하여 번식시키는 좀 더 자연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진 산지오베제를 혼합해서 사용하기 때문이다. 세 밭에서 만드는 와인을 차례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Badiola Chianti Classico Gran Selezione DOCG 
동명의 교회가 내려다보이는 바디올라 밭은 끼안티 클라시코에서 가장 높은 지구에 있다. 해발고도 570m 지점에 있는 포도원은 서늘한 기후의 특징이 잘 묻어난다. 산지오베제는 6가지 바이오타입(3클론+3마샬 셀렉션) 사용. 프렌치 오크 배럴(500lt, 30% 새 오크)에서 16개월 숙성하고 5개월간 콘크리트 탱크에서 숙성했다. 여기에 병숙성까지 포함하면 30개월 이상 숙성이 된다. 와인은 굉장히 아로마틱한데 달콤과 새콤 사이의 붉은 과일 향이 깔끔하게 후미를 장식한다. 버섯이나 흙 향이 살짝 와일드한 인상도 준다. 포도밭이 작아 생산량은 6200병 밖에 되지 않는다. 


∴Castello Fonterutoli Chianti Classico Gran Selezione DOCG 
2018년이 두 번째 빈티지인 다른 두 와인과 달리 1995년부터 생산해 온 대표적인 그란 셀레지오네다. 14개의 산지오베제 바이오타입(6클론+8마샬 셀력션)이 이용됐다. 프렌치 오크 배럴(500lt, 50% 새 오크)에서 18개월 숙성하고, 콘크리트 탱크에서는 4개월 숙성한다. 미묘하게 피어나는 체리와 블루베리 향이 우아하면서도 탄닌, 알코올, 산도의 조합이 꽤 탄탄한 구조감을 보여주는 클래식한 와인이다.


∴Vicoregio 36 Chianti Classico Gran Selezione DOCG 
비꼬레지오 26은 마쩨이 가가 50년이 넘도록 산지오베제 클론을 연구한 결실과도 같은 와인이다. 산지오베제 바이오타입 36가지(18클론+18마샬 셀렉션)를 총망라했다. 숙성과정은 앞의 와인과 동일. 체리와 나무, 약간의 스파이시한 향이 잘 베여들어 있고 좀 더 파워가 느껴지지만, 여전히 마쩨이 와인 특유의 맑음이 있다. 

마쩨이가 만드는 또 하나의 그란 셀레지오네

2006년 마쩨이 가는 이웃한 일 카지오(Il Caggio)의 와이너리와 포도원(끼안티 클라시코 중 까스텔리니 인 끼안티 지역에 있다)을 매입했다. 총 150ha의 부지에는 이들이 ‘천상의 끌로’라고 부르며 간절히 원했던 6.5ha의 포도밭이 있었다. 여기에서 만든 와인이 입수스 끼안티 클라시코 그란 셀레지오네(Ipsus Chianti Classico Gran Selezione DOCG)다. 2015가 첫 빈티지. 총 3,000병 생산되고 국내는 60병 들어온다. 체리와 라즈베리 향, 스모키한 노트, 미네랄 감이 은은하게 느껴지는 와인. 우아하지만 힘 있다. 지금 한 병 생긴다면 10년 후의 나를 위해 아껴두고 싶은 와인이다.   

가을엔 끼안티 클라시코

마지막을 제외하고 시음한 와인은 모두 2018 빈티지였다. 그해는 여름이 꽤 더웠고, 9월에 비가 와서 수확이 쉽진 않았지만 상당히 우아한 스타일에 아주 아로마틱 와인을 얻게 됐다고 한다. “음, 맛있다”를 연발하면서 ‘우아함’과 ‘아로마틱’이란 표현에 고개를 끄덕였다. 상큼한 체리 향은 끼안티 클라시코의 시그니처 향이지만, 맑은 날씨에도 여러 재질이 있듯 같은 과일도 여러 질이다. 마쩨이의 과일 향은 달콤함과 상콤함의 비중이 적절해서 예쁘단 생각마저 든다. 산미도 알맞고. 마르게리타 피자나 토마토 소스 파스타에 끼안티 클라시코보다 더 나은 선택지는 없을 것 같단 생각도 불쑥 끼어든다. 와인은 뒤로 갈수록 가을 향을 닮아갔다. 정작 가을은 빠르게 소진되고 있으니 끼안티 클라시코 한 잔이 가을을 오래 음미하는 방법 아닐까 싶다.  

글/사진 강은영, 사진 제공 하이트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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