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바인, 그리고 올드 빈티지 바로사 와인

Written by신 윤정

'올드바인'은 바로사 와인의 상징과도 같은 단어다. 백 살쯤은 거뜬히 넘긴 포도나무가 많다 보니 ‘가장 오래된 OOO 포도밭 중 하나’라는 표현을 어느 와이너리에서 빌려 써도 어색하지 않다. 반면 바로사 와인을 대할 때 간과하기 쉬운 영역도 있는데, 바로 '숙성력'이라 불리는 것이다. 특별히 최고급 프리미엄 와인이 아니더라도 바로사 와인은 일정한 숙성력을 갖추고 있다. 다만 맛있게 익은 바로사 와인을 잘 만나볼 수 없을 뿐이다. 영할 때 마셔도 입에 착 달라붙고 술술 넘어간다는 이유로 숙성의 꽃을 다 피우기도 전에 시장에서 소비되기 때문이다. 지난 5월 23일(화)에 ‘Old Vines and Rare & Distinguished’의 주제로 열린 바로사 와인 마스터 클래스는 이런 우리의 아쉬움을 날리고도 남았다. 호주 현지에서 직접 공수해 온 희귀한 와인들과 바로사 와인의 색다른 면을 보여주는 와인을 소개하기 위해, 아시아 지역 바로사 와인 앰버서더인 앤슨 무이(Anson Mui)가 방한했다. 클래스에서는 ‘바로사 와인 = 레드 와인’의 고정관념을 멋지게 타파한 화이트 와인 2종과 얼죽화(얼어 죽어도 화이트 와인을 마시는 사람)도 뒤돌아보게 만든 레드 와인 10종을 만나볼 수 있었다. 하나하나의 와인을 시음할 때마다 앤슨 무이는 스토리텔링을 곁들이며 이해를 도왔다.

아시아 지역 바로사 와인 앰버서더인 앤슨 무이(Anson Mui)

진짜 올드바인

바로사는 누구나 인정하는 ‘가장 잘 알려진’ 호주 와인 생산지다. 이곳에 처음 포도나무가 심어진 것은 1842년. 바로사에 정착한 독일인에 의해서다. 이후 바로사 사람들은 대를 이어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들며 강력한 커뮤니티를 형성해 왔다. 현재 포도 재배자 수만 550명 이상, 와이너리는 170개 이상 존재한다. 19세기 중반에 포도나무가 처음 심어진 셈이니 사실 아주 오랜 역사를 지닌 와인 생산지는 아니다. 그럼에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포도나무’를 시리즈(쉬라즈-까베르네 소비뇽-마타로-그르나슈-리슬링-세미용 등)로 읊을 수 있는데, 19세기 말 빅토리아주까지 넘어왔던 필록세라가 감히 남호주를 침범하지 못한 덕분이다. 더구나 필록세라에 내성이 있는 미국산 포도나무의 뿌리를 접목할 필요도 없었으니, 뿌리까지 진정한 올드바인이라 할 수 있다.

바로사 와인 마스터 클래스 현장

바로사에도 있다 ‘다양성’

풀바디의 명품 쉬라즈 와인들과 그와 비슷한 형제자매들로 늘 좋은 평가를 받는 바로사지만, 역설적으로 그로 인해 다양성 면에서는 과소평가를 받는다. ‘풀바디 레드 와인’의 틀에 갇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좀처럼 없는 것이다. 바로사 와인을 논하며 ‘다양성’이라는 키워드를 집어 든 게 낯익은 광경은 아닐 수도 있겠다. 하지만 바로사 존(Zone)은 바로사 밸리와 이든 밸리라는 고도와 기후가 다른 두 지역을 포괄하며, 이든 밸리는 또 하이 이든이라는 하위 지역을 품는다는 점에서 떼루아의 다양성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엄격한 생산 규정을 따라야 하는 유럽에 비해 생산자들의 자율성이 보장된다는 점도 플러스 요소. 그럼 바로사 와인의 어느 부분에 현미경을 대고 다양성을 찾아봐야 할까. 앤슨 무이와의 테이스팅을 통해 초점을 맞춰 보자.

바로사 와인 마스터 클래스에서 선보인 와인들

퓨지 베일 리슬링 2022
Pewsey Vale Riesling 2022

퓨지 베일은 이든 밸리 리슬링에 있어 상징적인 와이너리다. 170년 이상 된 이든 밸리의 첫 리슬링 포도밭이 있으며, Sustainable Winegrowing Australia(SWA) 인증을 받은 싱글 빈야드 리슬링만으로 와인을 만든다. 포도밭 고도가 거의 500미터에 달하는데, 이는 바로사 밸리의 평균보다 250미터가량 높은 수준이다. 높은 고도의 영향으로 비교적 시원한 기후를 보이고, 덕분에 포도의 긴 생장기가 보장되어 뛰어난 품질의 리슬링 포도가 생산된다. 앤슨은 “독일 리슬링보다 드라이한 스타일이다. 회, 굴과 좋고 치킨에 곁들이면 레몬이 따로 필요 없는 와인”이라고 소개했다.

시트러스와 복숭아, 청사과의 아로마와 흰 꽃, 레몬그라스의 향긋함에 미소 짓게 되는 와인이다. 샤프한 산미는 산뜻한 미감을 전달한다. 순수하고 깨끗한 리슬링을 잘 표현한 와인이다.
수입사 플라토와인트레이딩

시릴로 ‘1850 안세스터 바인’ 세미용 2018
Cirillo ‘1850 Ancestor Vine’ Semillon 2018

시릴로 에스테이트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그르나슈와 세미용 포도밭이 있는 와이너리다. 1848년 식재된 포도나무들은 바로사 밸리의 오랜 포도 재배 역사를 대변할 뿐만 아니라 호주 전체를 대표하는 유산이기도 하다. 이 세미용 와인 역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세미용 포도나무에서 생산되었다. 앤슨은 올드바인에 대해 “빈티지가 안 좋아도 일관성 있게 고품질의 포도를 생산할 수 있다. 물론 수확량은 적지만 훨씬 농축미 있는 와인을 만들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레몬 타르트, 레몬 크림, 누룽지, 옅은 견과류의 부드러운 향이 은은하게 표현되며, 레모니한 산미가 길게 이어진다. 무겁지 않고 섬세하지만 세미용의 고급스러운 농축미를 제대로 경험할 수 있는 와인이다.

시릴로 ‘1850 안세스터 바인’ 그르나슈 2016
Cirillo ‘1850 Ancestor Vine’ Grenache 2016

역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그르나슈 포도밭에서 생산되었다. 와인의 빈티지인 2016년을 기준으로 평균 수령은 166년 이상. 앤슨은 이 와인을 피노 누아에 비유하며 소개했다. “아시다시피 바로사에서는 피노 누아를 잘 생산하지 않는다. 그래서 바로사에서 누군가 피노 누아를 좋아한다고 하면 그르나슈를 권하곤 한다”라고.

그의 설명대로 피노 누아처럼 가볍고 섬세한 와인이었다. 피노 누아의 ‘우아함’보다는 ‘프루티함’쪽에 가까운 느낌인데, 자두, 라즈베리, 딸기의 과일 풍미 위로 시나몬, 후추, 허브의 양념이 가미된다. 미감은 가벼운 듯하지만, 입안에서 퍼지는 향에 압도되는 와인이다.

존 듀발 ‘플렉서스’ GSM 2021
John Duval ‘Plexus’ GSM 2021

존 듀발은 29년간 펜폴즈에 몸담으며 쉬라즈/그르나슈/마타로 블렌딩 와인인 빈138을 만든 인물이다. 이후 자신의 이름을 건 와인을 생산해 오고 있는데, 올해로 바로사에서 와인을 만든 지 딱 50년이 되었다. 랭턴 등급은 ‘Excellent’. 펜폴즈 빈138과 마찬가지로 세 품종을 블렌딩한 이 와인은 2003년부터 생산되고 있다. 앤슨은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균형미가 정말 좋은 와인”이라고 테이스팅을 이끌었다.

달콤한 건포도 향이 코를 스치며 자두, 다크 체리, 블랙베리의 아로마와 올스파이스, 감초의 스파이시함, 야생동물, 초콜릿의 향이 가미된 와인이다. 촘촘한 탄닌과 중심을 잡아 주는 산미가 균형을 잘 이룬다.
수입사 플라토와인트레이딩

캐슬러 ‘아비뇽’ 그르나슈/무르베드르 2013
Kaesler ‘Avignon’ Grenache/Mourvedre 2013

1840년대부터 바로사 밸리에 터전을 꾸려온 캐슬러 패밀리는 1893년 첫 포도나무를 심었다. ‘아비뇽’은 와인의 빈티지인 2013년 기준 84년 된 올드바인으로 만들어졌다. 그르나슈와 무르베드르 블렌딩 와인인데, “앞서 시음한 GSM에서 쉬라즈의 검은 과일 풍미가 빠짐으로써 상대적으로 가볍게 느껴지는 와인”으로 앤슨은 강조했다.

2013 빈티지이지만 아직 신선함을 가득 머금고 있는 와인. 붉은 과일의 아로마와 머스크, 페퍼, 허브의 향 뒤로 매콤함과 부드러움이 공존한다. 남부 론을 연상케 하는 와인이다.
수입사 루벵코리아

랑메일 더 프리덤 1843 쉬라즈 2010
Langmeil The Freedom 1843 Shiraz 2010

바로사의 또 다른 상징적인 와이너리 랑메일. 앤슨은 “올드바인에 특화된 와이너리”로 랑메일을 소개했다. 모든 종류의 올드바인을 가지고 있다고. 이 와인 역시 와인명에서 알 수 있듯 1843년 식재된 쉬라즈 올드바인에서 생산된 와인인데, 이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쉬라즈 포도나무라 한다. 바로사에는 와이너리들이 공동으로 와인을 보관하는 셀러가 있는데, 이번 마스터 클래스를 위해 특별히 2010 빈티지 와인을 꺼내 한국으로 바로 가져왔다고 한다.

트러플 초콜릿을 한입 베어 문 듯 부드럽고 풍성한 초콜릿 풍미가 입 안 가득 퍼지고, 블랙베리, 자두의 잘 익은 과일향, 감초, 에스프레소, 향신료 노트가 뒤따른다. 바로사 밸리 쉬라즈의 아름다운 숙성력을 입증한 와인.
수입사 레뱅

피터 르만 스톤웰 쉬라즈 2010
Peter Lehmann Stonewell Shiraz 2010

피터 르만은 바로사 지역의 전설적인 인물이다. 과거 지역 포도 재배자들이 포도를 팔지 못해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피터 르만은 이를 해결하고자 와이너리를 설립했다. 스톤웰 쉬라즈는 피터 르만 와이너리의 아이콘 와인으로, 클래스에 나온 2010 빈티지는 제임스 할리데이 97점을 받았다.

건포도와 검붉은 과일의 향 사이로 젖은 흙, 초콜릿, 감초, 클로브, 토스트 노트가 레이어된다. 부드러운 탄닌, 탄탄한 구조감과 복합적인 풍미가 강조되는 장기 숙성형 바로사 쉬라즈다.
수입사 롯데와인

그랜트 버지 미샥 쉬라즈 2006
Grant Burge Meshach Shiraz 2006

앤슨은 2006 빈티지로 준비된 그랜트 버지 미샥 쉬라즈에 대해 “숙성력이 참 좋은 와인인데, 어릴 때도 마시기 좋아 올빈을 잘 만나기 어렵다”라고 강조했다. 그만큼 이번 마스터 클래스를 위해 귀한 와인이 준비되었다는 뜻. 그랜트 버지는 16년 연속 제임스 할리데이 5 레드 스타에 빛나는 와이너리이며, 랭턴 등급으로는 ‘Outstanding’에 분류된다.  

잘 숙성된 그랑 크뤼 보르도 와인이 연상되는 깊고 고급스러운 향이 코를 감싼다. 다크 초콜릿, 시가, 클로브, 가죽, 포르치니 버섯, 말린 베리류 과일의 복합적인 향미와 고운 탄닌이 부드러운 인상을 남긴다.    
수입사 롯데와인

토브렉 런릭 쉬라즈 비오니에 2017
Torbreck RunRig Shiraz Viognier 2017

1994년 David Powell이 바로사 밸리에 설립한 와이너리. 바로사 밸리 와인의 고급화를 선도해 왔으며, 로버트 파커로부터 꾸준히 호평을 받아왔다. 랭턴 등급은 ‘Exceptional’. 최상급 와인인 런릭은 북부 론 지역 와인처럼 2% 내외의 비오니에를 블렌딩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비오니에의 꽃 향이 전체를 감싸며, 블루베리, 블랙베리, 체리의 과일 아로마, 머스크, 밀크 초콜릿, 은은한 허브의 향이 우아하게 번진다. 부드럽고 차분하면서도 화려한 면모를 보여준다.
수입사 신동와인

스탠디쉬 더 스탠디쉬 쉬라즈 2020
Standish ‘The Standish’ Shiraz 2020

토브렉에서 와인을 양조했던 스탠디쉬가 독립하여 세운 와이너리다. 앤슨은 “많은 사람이 토브렉의 와인 스타일을 따라 하고자 하지만, 스탠디쉬가 나온 이유는 토브렉과 다른 스타일의 와인을 만들고 싶어서”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북부 론 생조셉을 연상시키는 장미 아로마가 그윽하게 펼쳐지는 와인. 앞서 마신 토브렉 런릭보다 향은 여릿한데, 팔렛에서는 더 향긋하고 우아한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사 와인은 진하고 묵직할 거라는 고정관념은 이 와인을 마심과 동시에 굿바이.  

펜폴즈 ‘RWT’ 빈 798 쉬라즈 2020
Penfolds ‘RWT’ Bin 798 Shiraz 2020

펜폴즈의 아이콘 와인 중 하나로, 멀티 리저널 블렌딩 & 아메리칸 오크 숙성으로 만들어지는 그랜지와 대조적인 양조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바로사 밸리 단일 지역에서 펜폴즈 최초로 프렌치 오크를 도입하여 생산한 와인이다. 제임스 할리데이 97점, 로버트 파커 98점, 제임스 서클링 98점 등 평론가들의 점수가 품질을 대변한다.

다크 초콜릿과 스테이크의 육향, 로즈마리, 훈연 향 사이로 블랙베리, 블랙 커런트의 진한 과일 풍미가 존재감을 과시한다. 풀바디한 고급 바로사 밸리 쉬라즈의 전형을 보여준다.
수입사 금양인터내셔날

얄룸바 ‘더 시그니쳐’ 까베르네 소비뇽/쉬라즈 2013
Yalumba ‘The Signature’ Cabernet Sauvignon/Shiraz 2013

1849년 설립된 얄룸바는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가족 단위 와이너리다. 와인 양조에 필요한 오크통을 자체 제작하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와이너리이며, 포도나무 종묘장도 갖추고 있다. 랭턴 ‘Outstanding’으로 분류되며, 2013 빈티지의 이 와인은 제임스 할리데이 93점을 받았다.

시음적기에 다다라 숙성미가 꽃을 피운 바로사 레드 와인. 잘 숙성된 보르도 와인 같은 느낌을 준다. 블랙 커런트, 자두의 향과 시가, 페퍼, 가죽, 다크 초콜릿, 촉촉한 흙, 클로브의 깊은 노트가 풍성하게 퍼져 나간다.
수입사 나라셀라

바로사와인스쿨 클래스 문의
와인비전 winevision.kr

글/사진 신윤정 사진 제공 와인비전

  • 네이버 블로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기사 공개일 : 2023년 06월 14일
c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