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밭을 마시다: 마크 크레덴바이스

Written by신 윤정

알자스 와인에 남다른 애정을 지닌 와인 수입사 와이너. 알자스 와인을 "정말 사랑스러운 와인"이라고 표현하는 와이너 이승훈 대표의 멘트만 봐도 애정의 밀도가 짐작되리라. 익히 알려져 있듯 2011년과 2012년 한국 소믈리에 대회 우승자인 그는, 2009년 소믈리에 대회 입상으로 초청받은 알자스 투어에서 마크 크레덴바이스(Marc Kreydenweiss)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이후 2016년 와이너를 시작하며 첫 알자스 와인으로 선택한 와인도 다름아닌 마크 크레덴바이스였다. 지난 3월, 와이너의 1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와인메이커 앙투안 크레덴바이스(Antoine Kreydenweiss)가 방한했다. 그와 함께 하우스 오브 신세계 와인셀라에서 테이스팅 이벤트를 진행한 이승훈 대표는 “리슬링이라는 품종도 의미 있지만 ‘비벨스베르그(Wiebelsberg) 포도밭을 테이스팅한다’, ‘카스텔베르그(Kastelberg) 포도밭을 테이스팅한다’라는 표현이 이 와인들을 더 잘 나타낸다”라고 설명했다. 품종보다 땅의 이름을 먼저 기억하게 될 마크 크레덴바이스의 와인들, 그 뿌리를 찾아 알자스 땅으로 건너가 보자.

와이너 이승훈 대표(좌)와 마크 크레덴바이스의 와인메이커 앙투안 크레덴바이스(Antoine Kreydenweiss/우)

하나의 품종, 하나의 땅

알자스를 이해하려면 먼저 지도를 펼쳐야 한다. 프랑스 동북단, 독일과 맞닿은 이 가느다란 땅은 왼쪽으로 보주산맥(Vosges)이, 오른쪽으로 라인강(Rhine)이 나란히 흐른다. 포도밭은 자연스럽게 산과 강 사이에 조성되었는데, 이 지형이 알자스 와인의 운명을 결정했다. 프랑스 서부에서 불어오는 습기 머금은 바람을 보주산맥이 막아주는 것이 핵심. 비구름이 산맥을 미처 넘기 전에 비를 내려버리기 때문에 알자스에는 건조한 공기가 도착하고, 이 덕분에 알자스는 프랑스에서 가장 강우량이 적은 와인 산지 중 하나가 되었다. 낮은 습도에 더해 햇볕이 잘 드는 동향의 입지 조건까지, 알자스는 그야말로 포도 재배를 위해 자연이 공들여 설계한 무대라 할 수 있다. 프랑스의 다른 와인 산지보다 유기농과 바이오다이나믹 방식이 더 널리 시행되는 이유도 포도에 질병이 잘 발생하지 않는 기후 조건 덕분이다.

도멘 마크 크레덴바이스가 있는 알자스 앙들로 마을 / 사진 마크 크레덴바이스 인스타그램

토양은 알자스 테루아의 또 다른 핵심이다. 바로 붙어 있는 포도밭이라도 지층이 형성된 시대가 크게 차이가 나 토양의 성격이 전혀 다른 곳이 알자스다. 한마디로 토양의 성격이 다양하고 복합적이라는 뜻. 이 복잡한 지층 위에서, 알자스 농부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토양별로 가장 잘 맞는 포도 품종을 찾아냈고, 대를 이은 그 지혜의 결실은 알자스 와인의 특징인 '단일 품종 와인'으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이러한 특징은 지난 3월 앙투안 크레덴바이스의 방한 행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크레망 달자스(Cremant d'Alsace) 1종을 제외한 모든 알자스 와인이 단일 품종인 건 물론, 엔트리급 이외엔 싱글 빈야드로만 와인을 만든다는 사실도 눈에 띄었다. “하나의 포도밭을 테이스팅한다”는 이승훈 대표의 설명도 이 지점에 맞닿아 있다. 북에서 남으로 170km에 이르는 알자스 와인 가도(Route des Vins d'Alsace)에서 마크 크레덴바이스가 자리한 앙들로(Andlau) 마을은 비교적 북쪽에 속한다. 이승훈 대표에 의하면 “남쪽에서는 라운드하고 풍부한 스타일의 와인이 많이 생산되는 반면, 북쪽에서는 텐션이 좋은 스타일의 와인이 많이 생산된다. 그래서 테루아가 더 잘 반영되는 편”이라고. 하나의 품종으로 하나의 땅 이야기를 온전히 전할 수 있는 이유일 테다.

아버지와 아들의 진화

현 와인메이커 앙투안의 와인 스타일을 알아보기 전에 그의 아버지이자 와인메이커 마크 크레덴바이스(Marc Kreydenweiss)부터 살펴보자. 오늘날 알자스 바이오다이나믹 와인의 선구자라 불리는 그는 자연 그대로를 존중하는 철학으로 1989년 일찌감치 바이오다이나믹 농법을 도입했다. 유기농을 넘어서는 개념인 바이오다이나믹은 땅을 하나의 살아있는 유기체로 여기고, 달의 주기와 자연의 리듬에 따라 포도밭을 일군다. 알자스의 다양한 테루아를 와인병에 오롯이 담아내고 싶었던 그에게 바이오다이나믹은 최적의 수단이었다. 그렇게 알자스 와인 생태계에 한 획을 그은 후, 장남 앙투안이 와인메이커로 충분히 성숙했다고 판단한 그는 둘째 아들과 함께 랑그독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 가고 있다. 자갈이 많은 올드바인 포도밭을 구매하여 새로운 와인을 만들고 있는데, 인근에서 생산되는 남프랑스 와인들과는 조금 다른 개성을 지녔다 한다. 신선하면서도 씹히는 맛이 있어 “알자스의 DNA가 들어간 남프랑스 와인”으로 정의한다고.

포도밭을 돌보는 앙투안 크레덴바이스

네 곳의 그랑 크뤼를 포함해 13.5헥타르의 알자스 포도밭에서 와인을 만드는 앙투안. 13대째 와인 양조 전통을 이어오는 그지만, 아버지가 닦아놓은 길을 그대로만 걷지는 않는다. 물론 포도밭의 고유한 테루아를 담아낸다는 철학은 여전히 크레덴바이스의 중심이다. 하지만 앙투안은 알자스 내추럴 와인 씬에서 영향력 있는 생산자인 줄리앙 마이어(Julien Meyer)의 패트릭 마이어(Patrick Meyer)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으며, 바이오다이나믹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자신만의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방향성을 잘 보여주는 결과물이 바로 '륀 아 부아(Lune A Boire)' 시리즈다. 이름처럼 달빛 아래에서 편하게 기울일 수 있는, 보다 캐주얼하고 자유로운 스타일의 내추럴 와인들이다. 그러나 ‘륀 아 부아’ 시리즈를 포함한 마크 크레덴바이스의 와인은 과하지 않다. 지나치게 강렬하거나 개성이 튀는 내추럴 와인의 풍미 대신, 일상의 식탁에서 음식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가스트로노믹한 와인을 지향한다. 앙투안의 이번 한국 방문에 이승훈 대표가 자신 있게 기획한 행사 중 하나가 태국 음식과의 페어링 디너였는데, 다녀온 이들의 만족스러운 후기가 입소문으로 퍼지는 중이다. “샵보다는 주로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나 와인바에 많이 유통한다”라는 이승훈 대표의 설명에서도 방향성이 보인다.

지난 3월 방한 당시 디너 현장

예술와 와인, 떼려야 뗄 수 없는

마크 크레덴바이스의 와인을 처음 접하는 이들이 가장 먼저 눈길을 빼앗기는 건 다름아닌 레이블이다. 매년 새로운 빈티지마다 새로운 예술가의 작품이 병 위에 얹어지는데, 이 전통은 1983년 아버지 마크 크레덴바이스가 예술가를 처음 후원하면서 시작되었다. 해마다 한 명의 예술가를 선정해 전시회를 직접 주관하고, 그 예술가가 그 해 와인을 시음한 뒤 받은 영감으로 레이블 작품을 완성하는 방식이다. 일러스트, 회화, 조각까지 장르도 다양할 뿐만 아니라, 프랑스를 넘어 일본, 독일 등 여러 나라의 예술가들이 크레덴바이스와 함께해왔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쌓인 레이블 컬렉션은 그 자체로 하나의 아카이브가 되었는데, 이승훈 대표는 이렇게 설명한다. "와인메이커의 정신 세계와 사고방식, 삶의 철학이 예술가들과 굉장히 닮아 있다. 크레덴바이스는 같은 동료 의식, 거기에 예술가에 대한 존중을 더해 해마다 다른 예술가의 작품으로 그 마음을 표현해왔다." 예술을 만나 단순한 음료를 넘어 한 해의 기억을 담은 작품이 된 그 와인들을 앙투안 크레덴바이스의 방한 행사에서 만나보았다.

(왼쪽부터) 크레망 달자스 륀 아 부아 뷜, 오 데쉬 드 라 로아 리슬링, 크리트 피노 블랑, 크리트 게뷔르츠트라미너, 비벨스베르그 그랑 크뤼 리슬링 라 담, 륀 아 부아 후즈

테이스팅한 와인들

크레망 달자스 륀 아 부아 뷜(Cremant d'Alsace Lune A Boire Bulle)

2021 빈티지 와인 75%에 2016~2020 빈티지의 퍼페추얼 리저브를 블렌딩하여 만든 크레망 달자스. 품종은 피노 블랑, 옥세루아, 샤르도네가 사용되었다. 테이스팅 이벤트에서 앙투안은 “크레망이지만 와인답게 만들고 싶었다”라고 이 와인을 소개했는데, 한 모금 입에 머금으면 단번에 그 말을 이해하게 된다. 신선한 서양배, 골든 사과, 레몬 제스트의 상큼한 과일 아로마에 고소한 비스킷과 빵, 견과류 노트가 더해져, 버블이 있는 알자스 화이트 와인을 마시는 느낌이랄까. 섬세한 버블은 입안을 부드럽게 채워주며 산뜻하게 마무리된다.

륀 아 부아 후즈(Lune A Boire Rouge) 2022

내추럴 와인 특유의 주시함이 돋보이는 와인. 라즈베리, 레드 체리, 크랜베리 등 붉은 베리류의 과일 아로마가 폭발적으로 다가오고, 가벼운 허브와 꽃, 흙 내음, 약간의 버블검 뉘앙스가 더해진다. 지나치게 개성이 강한 내추럴 와인 보다는 가스트로노믹한 와인을 지향한다고 했던 설명처럼, 피노 누아의 향기로운 과일 풍미와 아름다운 질감을 부담없이 즐기기 좋은 캐주얼한 스타일의 와인이다.

크리트 피노 블랑(Kritt Pinot Blanc) 2022

‘부싯돌’이라는 뜻을 지닌 ‘크리트(Kritt)’ 싱글 빈야드에서 생산되어 뚜렷한 미네랄리티를 지니는 피노 블랑이다. 감귤, 사과, 복숭아, 파인애플 등 화사한 과일 아로마와 약간의 쌉싸름한 아몬드, 흰 꽃 향이 조화를 이룬다. 보통의 피노 블랑보다 탄탄한 골격과 좋은 산도, 복합미를 자랑하며 섬세한 표현력이 돋보인다. 뚜렷한 개성이 지니면서도 편안하게 마시기 좋은 와인.

오 데쉬 드 라 로아 리슬링(Au Dessus de La Loi Riesling) 2020

보주 산 바로 아래, 빼어난 테루아에서 자란 싱글 빈야드 리슬링의 정수를 보여주는 와인. 살구, 천도복숭아와 같은 핵과류와 사과, 배, 레몬 제스트의 산뜻한 아로마가 빈틈없이 어우러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피어나는 허니서클의 꽃 향기와 너티함, 약간의 생강 향이 깊이를 더해준다. 뼈대를 견고하게 잡아주는 산도는 라운드하게 다듬어져 있으며, 단단한 구조감과 투명한 미네랄리티가 강조된다.

레흐센베르그 피노 그리(Lerchenberg Pinot Gris) 2020

‘종달새의 언덕’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지닌 포도밭. 35년 수령의 포도나무에서 생산한 피노 그리 와인으로, 잘 익은 배, 멜론, 살구의 풍성한 과실미에 피노 그리 특유의 은은한 스모키함과 꿀 향이 매력적으로 어우러진다. 입안에서 자칫 무겁게 흐를 수 있는 풍미를 중간 이상의 산도가 잘 잡아주고, 매끄러운 질감과 적당히 지속되는 여운도 매력적이다. 약 2,600병 한정 생산된다.

비벨스베르그 그랑 크뤼 리슬링 라 담(Wiebelsberg Grand Cru Riesling La Dame) 2021

비벨스베르그(Wiebelsberg)는 알자스 방언으로 ‘여성의 언덕’이라는 뜻인데, 과거 여승이 많이 살았던 지역이라 붙은 이름이라 한다. 가파른 경사면에 조성된 모래가 많은 토양의 포도밭으로, 표현력이 좋은 리슬링 와인이 생산된다. 와인은 잘 익은 핵과류와 시트러스, 진한 페트롤과 꿀, 견과류의 풍미가 겹겹이 쌓여 뛰어난 집중도와 볼륨감을 보여준다. 훌륭한 산미와 약간의 타닌, 부드러운 질감이 입안에서 어우러지며 우아한 피니쉬로 이어진다. 지금도 굉장히 표현력이 좋은데, 20년 정도의 숙성 잠재력이 있다고 한다.

카스텔베르그 그랑 크뤼 리슬링(Kastelberg Grand Cru Riesling) 2019

알자스 그랑 크뤼 중 유일하게 검은 편암 토양을 품고 있는 포도밭인 카스텔베르그(Kastelberg). 앙들로 마을을 굽어보는 아찔한 경사면에 자리한 이 전설적인 포도밭에서는 선조들의 지혜에 따라 300년 전부터 리슬링만 재배해왔다. 잔에 따르는 순간 직관적인 시트러스 아로마와 함께 특유의 페트롤, 알싸한 백후추, 신선한 허브 아로마가 강렬하게 일어난다. 입안에서 드러나는 견고한 골격과 힘, 밀도감은 날카로운 산도와 조화를 이룬다. 아주 긴 숙성 잠재력을 지녔다.

랑볼(L'Envol) IGP 2021

앙투안의 아버지 마크 크레덴바이스가 랑그독에서 생산한 와인. 그르나슈와 무르베드르가 절반씩 블렌딩되었다. 남프랑스의 따뜻한 햇살을 받고 자란 포도의 잘 익은 검붉은 과실 향과 초콜릿, 짙은 꽃 향기가 무겁지 않게 다가온다. 감칠맛 나는 쌉싸름함과 흙 내음, 야생화, 허브 뉘앙스가 어우러지고, 산미가 생동감을 준다. 균형미가 좋아 마시기 편안하고 경쾌한 스타일이다.

수입사 와이너
▶인스타그램 @winer_wine

글·사진 신윤정 사진·자료 제공 와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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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공개일 : 2026년 04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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