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괜찮은 무알코올 와인 없을까?

Written by강 은영

알코올을 피하고 싶어서

금주령이 떨어진지 몇 달 째, 저녁 식사에 와인 대신 진저비어, 깔라만시 원액을 한 스푼 섞은 탄산수 등을 전전하다 생각했다. ‘어디 괜찮은 무알코올 와인 없나?’ 몇 년 전 한 와인생산자가 무알코올 와인을 내밀며 “술을 못하거나 마실 순 없지만 분위기는 놓치지 않고 싶은 사람들에게서 수요가 늘고 있다” 했을 땐, 남들 얘긴 줄 알았다. 검색 창에 무알코올 와인을 친다. 와인산지의 포도를 수확하여 착즙한 비발효성 음료로 나오고, 원재료도 포도가 아닌 외관만 와인과 유사한 제품도 뜬다. 패쓰. 여기선 와인을 만든 후 알코올을 제거한 ‘디알코올라이지드 와인(dealcoholized wine)’ 위주로 접근하려고 한다. 와인에서 알코올을 없애는 건 집에서도 할 수 있다. 팔팔 끓이면 된다. 그래서 잃는 게 알코올만이 아니라는 게 문제일 뿐. 핵심은 ‘어떻게 향과 맛에 타격을 덜 주고, 와인의 캐릭터를 덜 훼손시키면서 알코올만 쏘옥 빼느냐’이다. 무알코올 와인을 내밀던 그 생산자도 “자세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우리에겐 알코올을 빼는 신기술이 있다”고 자랑했는데, 기술의 요점만 설명하면 이렇다.  

무알코올 와인 2

와인에서 알코올을 빼는 방법은 통상 3가지가 있다. 첫째 진공 증류(Vacuum distillation). 진공상태에서는 끊는 점이 낮아지기 때문에 25~30°C의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도 와인에서 알코올과 휘발성 물질을 분리할 수 있다. 후에 향은 다시 혼합한다. 두 번째, 스피닝 콘 칼럼(Spinning cone columns). 추출 원리는 진공증류와 유사하다. V자형 틀과 원심력을 활용하여 와인과 스팀의 접촉면적을 늘이고 증발과 응축과정을 반복하면서 알코올 및 휘발성 물질을 추출한다. 마지막은 역삼투압 원리를 이용 알코올을 분리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알코올을 분리한 경우에도 와인에 미량의 알코올(0.5% 미만)이 남아 있을 수 있다. 무알코올 와인이라 하여 완전한 ‘무’알코올은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무알콜올 와인은 클래식 와인과 경쟁하지 않는다? 

IWSR의 리서치에 따르면, 무알코올 음료(알코올을 뺀 주류)는 그 오리지널 버전에 비해 퀄리티가 떨어질 것이라는 인식이 있다고 한다. 점잖게 돌려 말했지만, 인식이라기보다 사실에 가깝다. 알코올이 단지 ‘취기’만 조성하는 것은 아니니까. 알코올이 형성하는 바디감과 질감의 빈자리, 알코올을 분리하는 과정에서 얼마간 놓쳐버린 아로마와 풍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그럼에도 ‘충분히 와인 맛이 난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할까. 2007년 무알코올(dealcoholized) 와인을 출시했던 토레스의 오너 미구엘 토레스 마자섹(Miguel Torres Maczassek)은 무알코올 와인의 한계와 가능성을 잘 지적한 바 있다. “무알코올 와인은 클래식 와인과 경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물, 주스, 소프트 드링크 등 음식과 매칭하기에 이상적이지 만은 않은 음료들과는 경쟁할 수 있다”고. 더욱이 무알코올의 확실한 이점들이 있다. 일반 와인보다 칼로리가 1/3쯤 낮고, 임산부에게도 OK, 일터에서 파티할 때도 노 프러블럼. 스포츠를 하면서도 가능(골프 중 무알코올 와인 한 잔?), 운전 걱정일랑 접어두며, 정신줄 놓을 일도 건강을 해칠 일도 없다. 기존의 와인애호가와는 또 다른 잠재 소비층을 노려볼 만 한 매력적인 요소들이다. 이쯤 되니 해외 시장에서 무알코올 와인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수긍이 간다. IWSR의 리서치도 이를 증명하고 있는데, 연구결과에 의하면 2019년과 2020년 사이 10개의 주요 시장(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호주, 캐나다, 남아공, 일본, 브라질)의 무알코올 부분 소비량은 4.5% 상승했다. 더불어 저알코올과 무알코올 제품의 소비량은 2024년까지 31%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무알코올 와인 3

무알코올 와인의 선택지가 늘어나길  

호주의 유명 와인생산자 맥기건(McGuigan)은 무알코올 와인으로 의미심장한 성공을 거둔 케이스다. 이들의 제로 시리즈는 전체 와인 세일즈의 7%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 무알코올 트렌드에 대한 CEO 크레이그 개빈(Craig Garvin)의 해석도 흥미롭다. “초기 이 컨셉을 런칭할 때에는 밀레니얼 세대들이 이 트렌드를 이끌 것이라 생각했는데, 꼭 그런 것만이 아니었다”고. 무알코올 와인의 성장 배경은 지속가능성을 향한 움직임이 다시 불붙었기 때문이며 “코로나19 상황도 여기에 일조했다”고 보았다. 여전히 저녁 식사에 와인을 마시길 원하면서도, 좀 더 건강과 웰빙을 생각하는 마음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맥기건 와인의 국내 수입사인 와이넬의 한 관계자는 제로 시리즈를 시음하곤 시장에서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알코올이 주는 바디감은 좀 부족했지만 와인의 캐릭터를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특히 스파클링 와인은 청량감이 좋아서 이를 상쇄했고, 향도 일반 와인과 큰 차이가 없었다”는 게 설명. 수입을 시도했으나 제품 분류상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 (여기서 부연하면, 와인의 정의는 ‘신선한 포도를 발효하여 만든 알코올 음료’이고, 몇몇 예외를 제외하곤 최소 8%의 알코올을 포함하게 되어 있다. 무알코올 와인은 공식적으론 와인이 아니라는 결론. 아직까지는 그렇다. 보통 음료나 주스로 분류된다. 업계의 의견은 분분하다. 와인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수요가 느는 새로운 시장인데 우리 영역을 뺏겨야 하나!)도 솔깃하고, 와인으로 부를 수 없다는 정통파의 의견(수세기 동안 쌓아온 와인 양조 전통에 어긋나는 건 어쩔!)도 논리가 있다.) 식약처에서는 와인 공정에 발효가 없어야 과채주스 항목에 들 수 있다는 입장이었고, 기타 발효음료로 분류하고자 하니 제한되는 성분들이 있어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재차 질의를 했지만 답변은 도돌이표. 국내에 들어오고 있는 무알코올 와인(dealcoholized wine)들이 있는데 의문이다.  

와이넬 무알코올 와인 맥기건
맥기건의 제로 시리즈 / 사진 제공 와이넬

호주의 또 다른 빅 브랜드, 하디(Hardys)가 출시한 무알코올 와인(dealcoholized)들은 곧 맛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디 와인이 속해있는 아콜레이드 그룹의 한국 지사를 맡고 있는 오미경 이사는 “내년 상반기 하디의 알코올 프리 시리즈 3종(레드, 화이트, 스파클링 와인)을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녀는 “당장 매출이 크지 않더라도 무알코올 와인에 대한 전망은 긍정적”이라고 보았다. “5년 전에는 무알코올 맥주도 잘 안 됐지만 지금은 많이 수입되고, 칼로리가 낮은 음료나 술에 대한 니즈는 셀처 열풍으로도 확인이 됐다”고, 즉 시장이 변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젊은 소비자들은 다이나믹한 것을 원하는데, 수입맥주를 즐기다가 다양성을 찾아 와인으로 옮겨간 것도 그런 맥락으로 보고 있다. 더군다나 무알코올 와인은 온라인 판매도 가능하다”고 그녀는 낙관했다. 한편 롯데칠성음료의 지은정 과장도 “현재 호주와 미국에서 무알코올 와인 샘플을 받아 검토 중”이라고 귀띔했다. “다양성에 대한 시장의 요구에 적극 반응하겠다”는 의지라고. 무알코올 와인의 선택지가 늘어난다는 건 반가운 뉴스다. 아무쪼록 의사 선생님께 혼나지 않고 마실 수 있는 괜찮은 와인들이 많이 생겨나길 기도한다.  

 강은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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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공개일 : 2021년 08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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