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페인 루이 로드레(Champagne Louis Roederer)의 특별한 한 해가 지나고 있다. 플래그십 샴페인인 크리스탈 로제(Cristal Rose)가 탄생 50주년을 맞이한 해이기 때문. 대표적인 럭셔리 샴페인으로서 크리스탈은 과거 미국 힙합 스타들의 애정을 한 몸에 받으며 뮤비나 파티 씬에 종종 등장한 바 있다. 당시 부와 사치의 상징으로 이미지가 소비되기도 했지만 크리스탈은 언제나 본질에 집중하며 그 자체로 고아한 빛을 내어 왔다. 특히 생산량이 2만 병도 채 되지 않는 희소성과 압도적인 퀄리티를 바탕으로 크리스탈 로제는 많은 와인 러버의 ‘드림 샴페인’으로 손꼽힌다. 올해 크리스탈 로제의 탄생 50주년을 기념하여, 지난 10월 루이 로드레의 오너 프레데릭 루조(Frédéric Rouzaud)와 셀러 마스터 겸 부사장 장 바티스트 레카이용(Jean-Baptiste Lécaillon)이 방한했다. 페어몬트 서울 호텔 마리포사에서 열린 크리스탈 로제 50주년 기념 런치를 통해 크리스탈 로제의 빛나는 가치를 재조명해 본다.
미니멀리즘으로 완성한 가장 순수한 샴페인
거대 자본이 유입되는 샴페인 세계에서 오랜 세월 가족 경영을 유지하는 샴페인 하우스는 흔치 않다. 루이 로드레처럼 규모 있는 곳이라면 더욱. 그렇기에 1776년 시작된 루이 로드레가 7세대째 가족 경영을 이어왔다는 건 그 자체가 큰 재산이라 할 수 있다. 런치를 시작하며 루이 로드레의 오너 프레데릭 루조도 이를 강조했다. “가족 경영은 독립성과 자유가 있어 샴페인을 창의성 있게 만들 수 있다. 또한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해선 포도나무의 수령이 20~30년은 되어야 한다는 점도 가족 경영에는 이점으로 작용한다. 루이 로드레는 몇십 년 뒤에도 창의성을 강조하며 지금과 같은 와인을 만들 예정이다." 런치가 진행되는 동안 오너 프레데릭과 셀러 마스터 장 바티스트는 이날의 키워드라고 해도 될 만큼 ‘창의성’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사용했다. 비슷한 규모와 인지도를 지닌 샴페인 하우스들이 대부분 대형 그룹에 속해 있는 것과 달리 독립된 샴페인 하우스이기에 외부의 간섭 없이 원하는 스타일의 샴페인을 만들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루이 로드레가 ‘원하는 스타일’이란 무엇일까? 프레데릭의 설명에 의하면 “미니멀리즘을 통해 백악질 토양을 보여주는 가장 순수한 샴페인”으로 요약된다. 샴페인 품질의 80%가 포도밭에서 결정된다고 하는 그의 말에서 가족 경영만큼이나 중요한 요소가 포도밭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첫 세대부터 오늘날까지 루이 로드레는 계속해서 포도밭을 구매해 왔다. 직접 소유한 240헥타르의 포도밭은 가장 정확한 테루아의 표현을 위해 2000년대 초부터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관리되고 있다. 생물 다양성을 위한 루이 로드레만의 특별한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이름하여 ‘솔라 패널(Solar Panel)’. 포도나무의 클론별 잎사귀를 촬영하여 한지에 인화하는 작업이다. 마샬 셀렉션을 위해 운영되는 루이 로드레 포도 묘목장의 귀중한 자료인 동시에 ‘100가지가 넘는 피노 누아 포도나무의 잎사귀를 진짜 포도잎같이 질감까지 표현한 예술 작품’이기도 하다. 샴페인 지역에서 거의 유일하게 포도 묘목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니 자연스레 루이 로드레의 미래가 궁금해진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크리스탈 로제 5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만나본 샴페인들부터 살펴보자.
피노 뫼니에로 하이라이트된 백악질 토양, 루이 로드레 컬렉션 244
루이 로드레의 컬렉션 시리즈는 기본급 샴페인은 항상 일관된 맛을 유지한다는 틀을 깨고, 매년 베이스 와인의 빈티지 특성을 담아내는 루이 로드레의 새로운 프로젝트다. 기존의 브륏 프리미에를 대신하여 컬렉션 242가 출시된 게 벌써 3년 전의 일. 스테디셀러라 할 수 있던 브륏 프리미에의 생산을 중단하고 컬렉션 시리즈를 만들기로 결정한 배경에는 기후 변화가 있다. 10년 전, 점점 불안정해지는 기후 환경에서 매년 같은 컨디션의 포도를 수확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한 루이 로드레는 ‘멀티 빈티지(Multi Vintage) 퀴베라는 컨셉 아래 매년 베이스 와인의 빈티지 특성을 표현하기로 한다. 그렇게 지난 3년간 컬렉션 242, 243, 244가 차례대로 세상에 나왔다.
이날 런치에서 선보인 퀴베는 컬렉션 244. 뒤에 붙는 숫자는 샴페인 하우스가 시작된 1776년 이래 만들어진 퀴베의 넘버인데, 가령 컬렉션 244의 경우 루이 로드레가 만들어 낸 244번째 퀴베를 뜻한다. 셀러 마스터 장 바티스트 레까이용에 의하면 2019년산 포도를 베이스로 사용한 컬렉션 244는 보통보다 피노 뫼니에가 많이 들어가 더욱 섬세하고 백악질 토양도 잘 표현되었다고 한다. 최종 블렌딩 비율은 샤르도네 41%와 피노 누아 33%, 피노 뫼니에 26%. 멀티 빈티지 퀴베인만큼 54%만 2019년산 와인이며 나머지는 셀러 마스터를 위한 창의성의 영역이었다. 장 바티스트는 매년 베이스 와인의 특징에 따라 퍼페추얼 리저브(Perpetual Reserve)와 오크 숙성 와인의 블렌딩 비율을 정하는데, 컬렉션 244의 경우 퍼페추얼 리저브는 36%, 프렌치 오크통에서 숙성한 이전 빈티지 와인과 크리스탈 포도밭의 영 바인으로 만든 와인이 10% 블렌딩되었다. 그는 컬렉션 시리즈에 대해 “Lightness of Champagne”라 표현했는데, 좀 더 파워풀한 스타일인 루이 로드레의 빈티지 샴페인과 달리 집중도가 좋으면서도 섬세한 스타일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베이스 와인의 빈티지 특성이 표현되면서도 하나의 그림체로 모아지는 루이 로드레의 컬렉션 시리즈, 앞으로 나올 다음 넘버의 컬렉션이 벌써 기대된다.
파워풀한 빈티지 브륏 2015 & 온화한 빈티지 로제 2016
샹파뉴 전역을 아우르는 컬렉션과 달리 루이 루드레의 빈티지 라인업은 포도의 생산지가 한정된다. 크리스탈 로제 50주년 런치에서는 먼저 '루이 로드레 빈티지 브륏 2015(Louis Roederer Vintage Brut 2015)'를 만나볼 수 있었는데, 로드레 가문이 처음 포도밭을 구매했던 몽타뉴 드 랭스(Montagne de Reims)의 베르지(Vergy) 그랑 크뤼 마을 포도밭에서 생산된 포도를 사용했다. 북향에서 재배된 피노 누아 70%를 바탕으로 샤르도네가 30% 블렌딩된 와인. 장 바티스트는 “2015년은 파워풀한 빈티지다. 잘 익은 포도의 느낌이 많고 풍성한 편이라 숙성력도 좋다”라고 소개했는데, 그의 말처럼 빈티지 브륏 2015는 농밀한 과일 아로마와 숙성 부케가 강렬하고 복합적으로 다가오고 탄탄한 산미가 구조감을 형성하는 파워풀한 샴페인이었다. 루이 로드레의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고 할까.
함께 준비된 '루이 로드레 빈티지 로제 2016(Louis Roederer Vintage Rose 2016)'은 좀 더 부드러운 인상을 바탕으로 레드 베리류 과일 아로마가 선명하게 표현되었다. 포도는 대부분 발레 드 라 마른(Vallée de la Marne)의 쿠미에르(Cumières) 마을에서 생산된 62%의 피노 누아에 38%의 샤르도네가 블렌딩되었다. 빈티지 로제 2016의 온화한 캐릭터는 장 바티스트의 설명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는데 “남향으로 조성된 포도밭의 피노 누아를 사용하여 과일 향이 더 부드럽고 집중도도 좋다”라고. 뒤에 크리스탈 로제를 이야기할 때 다시 조명하겠지만, 빈티지 로제는 루이 로드레만의 인퓨전(Infusion) 테크닉으로 생산된다. 피노 누아 포도의 색과 아로마를 약하게 스킨 컨택하여 추출해 내는 것. 또 로제 샴페인을 만드는 좀 더 일반적인 방식인 '발효가 끝난 와인을 블렌딩'하는 게 아니라, 피노 누아 주스를 샤르도네 주스와 함께 발효하는 것도 특별한 점이다. 기나긴 양조 여정의 초반부터 두 품종이 융화되어 더 잘 어우러진 로제 샴페인이 완성되는 것이다.
자이언트 오브 샹파뉴, 크리스탈 2007
셀러 마스터 장 바티스트 레카이용은 “왕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첫 샴페인”으로 크리스탈을 소개했다. 때는 1876년, 루이 로드레의 샴페인을 특별히 좋아했던 제정 러시아의 황제 알렉산더 2세(Alexander Ⅱ)가 매년 가장 좋은 퀴베를 자신을 위해 남겨둘 것을 루이 로드레에 요청했고, 이것이 크리스탈의 시작이었다. 오늘날 크리스탈의 상징적인 투명한 병과 병 바닥의 평평한 펀트(Punt)도 독극물로부터 안전한 샴페인임을 눈으로 확인하고자 했던 알렉산더 2세를 위해 시작된 거다. 그리하여 약 150년이 흐른 지금, 크리스탈은 누구나 선망하는 최고급 샴페인이 되었다.
장 바티스트는 “백악질 토양의 우아함과 섬세함을 담은 샴페인”으로 크리스탈을 정의하며 포도밭을 특히 강조했다. “모든 포도밭은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고 유기농 인증을 받았다. 보통 1헥타르당 8천 그루 정도의 포도나무를 심지만 크리스탈은 1만 그루 이상을 심는다. 그 결과 더 좋은 농축미와 미네랄을 가질 수 있다. 포도나무가 작고 포도송이도 적게 열리기 때문에 토양을 좀 더 잘 보여주는 와인이 만들어진다.” 크리스탈을 위한 포도나무의 평균 수령은 43년, 가장 어린 경우에도 최소 20년은 되었으며 오래된 포도나무는 80년까지 된다고 한다. 앞서 오너 프레데릭이 언급한 가족 경영의 장점이 여기에서 다시 한번 강조된다. 이는 또한 ‘자이언트 오브 샹파뉴’라는 크리스탈의 닉네임으로도 자연스레 연결된다. 장 바티스트는 “최고의 샴페인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기 때문”으로 이 애칭의 배경을 설명하며, 좀 더 구체적으로는 “조화롭고 아름답고 숙성력이 좋으며 오래될수록 영해지는 느낌”이라 부연했다. ‘오래될수록 영해지는 느낌’이라니, 얼핏 모순된 표현 같으나 런치에 나온 크리스탈 2007을 한 모금 입에 넣는 순간 어렴풋이 그 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최근 빈티지라면 분명 미네랄리티가 중심에 있었겠지만, 이미 숙성향이 발현된 크리스탈 2007은 여러 겹의 아로마와 부케가 켜켜이 쌓여 복합미뿐만 아니라 생명력까지 함께 전해지는 느낌. 황제를 위해 탄생한 샴페인이 샴페인의 황제가 되었다고 표현해도 결코 과하지 않다.
루이 로드레의 창의성이 꽃을 피운, 크리스탈 로제
크리스탈을 만든 지 100여 년이 흐른 1974년, 현 오너 프레데릭 루조의 아버지 장 클로드 루조(Jean-Claude Rouzaud)는 특별한 퀴베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루이 로드레의 다음 세대를 열 샴페인, 크리스탈 로제였다. 이를 위해 그는 샹파뉴의 뮈지니라 불리는 아이(Aÿ) 마을에서 최고의 올드바인 피노 누아 포도밭과 아비즈(Avize) 및 르 메닐 쉬르 오제(Le Mesnil-sur-Oger) 마을의 샤르도네 포도밭을 선택했다. 모두 그랑 크뤼였다. 크리스탈 그 자체도 선별된 45개 구획에서 나온 포도로 만들어지는데, 크리스탈 로제는 단 3~5개 구획에서 나온 포도로 만들어진다. 19세기에 시작된 크리스탈이 100년 동안 다듬어 온 기품을 그대로 이어받고, 극소량 생산되는 희소성과 완벽한 품질을 앞세워 향후 50년 동안 최고급 샴페인으로 만인의 사랑을 받을 퀴베는 그렇게 탄생했다.
앞서 언급했던 루이 로드레의 ‘창의성’이 가장 잘 반영된 샴페인이 크리스탈 로제이기도 하다. 그 중심엔 인퓨젼 테크닉이 있는데, 루이 로드레에서 자체 개발한 양조법으로 피노 누아의 아로마와 색을 아주 부드럽게 뽑아내는 방식이다. 크리스탈 로제의 시작부터 적용해 왔지만 일본 티 마스터의 작업에서 영감을 받은 장 바티스트에 의해 지난 25년간 완성도를 더욱 높여왔다. 이렇게 섬세하게 추출된 피노 누아 주스에 샤르도네 주스를 넣어 같이 발효시킴으로써 매끄럽고 조화롭게 융합된 와인이 완성된다. 장 바티스트는 이 과정이 매우 만들기 어렵지만 “피오니와 장미 꽃잎과 같은 꽃 향이 좀 더 발현되고 마카롱 맛이 나는 와인이 완성된다”라고 이점을 설명했다. 50주년 기념 런치에 나온 크리스탈 로제는 2013 빈티지. 시원한 해로 크리스탈 로제 역사상 가장 좋은 빈티지로 꼽힌다. 보통 피노 누아 55%에 샤르도네 45%가 블렌딩되는 비율이 그대로 적용됐고, 베이스 와인의 20%는 오크통에서 숙성했다. 장 바티스트는 “크리스탈보다 좀 더 파워풀하면서도 더 우아한” 샴페인으로 크리스탈 로제를 정의했는데, 은근히 드러나는 피노 누아의 베리류 과일과 고소하고 크리미한 아로마, 강렬하면서도 우아한 풍미와 직선적인 산미, 섬세하게 잘 짜인 미감을 보인 2013 빈티지가 이를 증명했다. 탄생부터 이미 완성형이었던 크리스탈 로제는 현역임에도 ‘전설적인 샴페인 메이커’라 불리는 장 바티스트 레카이용에 의해 발전을 거듭해 왔다. 이 첫 반세기 역사를 주춧돌로 크리스탈 로제는 영원히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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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신윤정 사진·자료 제공 에노테카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