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마데이라 와인 협회의 초청으로 마데이라섬에 방문한 적이 있다. 평소 주정 강화 와인, 마데이라를 좋아하긴 했지만 와인 맛을 본 것이었을 뿐 여행지로서의 매력은 알 수가 없었는데 막상 현장을 방문해 보니 마데이라섬은 와인은 물론이며 휴양하기에도 훌륭한 곳이었다. 누구나 반할만한 요소들로 가득 찬 환상의 섬. 어언 6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이곳에 한번은 꼭 방문해 봐야 한다’라고 앰버서더 활동을 넘어 전도를 하고 있다. 와인러버라면 더더욱.

와인뿐 아니라 여행지로서도 이렇게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큰 이유 중 하나는 일단 날씨가 받쳐주는 곳이기 때문. 북위 약 32°~33° 부근에 있는 마데이라섬은 '영원한 봄의 섬(The Island of Eternal Spring)'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이에 걸맞게 일 년 내내 온화한 아열대성 기후를 유지한다. 겨울에 방문해도 열대과일이 넘쳐나고(게다가 정말 저렴하고!), 수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온화한 기후를 보여주는 곳. 직관적으로 비교해 보자면 마데이라섬보다 제주도가 약 2.5배 정도 더 크다. 상대적으로 작은 섬이지만 해안선에서부터 중앙의 높은 산악지대까지 이어지는 급격한 고도 변화로 다채로운 기후대가 존재해 다양한 매력을 지닌 토착 품종을 키울 수 있다.

100년 이상 숙성 가능한 와인이 있다고? 마데이라 와인의 특별한 매력
마데이라는 ‘영원불멸의 와인’이라는 또 하나의 별칭이 있다. 장기 숙성이 가능하다는 점은 늘 와인 애호가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10년, 20년 숙성은 일반적인 편에 속하며 출시 이후 100년 이상 장기 숙성을 하는 와인들도 종종 만나볼 수 있다.
이렇게 오랫동안 숙성이 가능한 이유는 뭘까? 이유는 산화와 열화를 의도적으로 실행하는 남다른 제조 방식에 있다. 이 과정을 거치며 마데이라 와인의 독특한 풍미 또한 만들어진다. 와인에 열을 가하고 산소와 접촉하게 한다고? 와인에서 가장 피해야 할 두 가지가 바로 열과 산소인데 믿기 어렵지만 마데이라는 이 두 가지 요소를 벗으로 삼아 와인을 숙성한다. 어떻게 이런 방식을 쓰게 되었을까?

때는 17~18세기 대항해 시대. 마데이라섬은 유럽에서 아메리카 대륙이나 인도, 동남아시아로 향하는 항로에 있었다. 당시 범선들은 긴 항해를 위해 마데이라에 들러 신선한 물과 음식을 보충했는데, 이때 마데이라 와인 또한 대량으로 실었다. 그렇게 와인은 적도를 두 번이나 통과하는 수개월간의 긴 항해를 거쳐야 했다. 일반적인 와인이라면 적도를 거치며 쉽게 변질되었겠지만, 주정을 강화해 도수를 높인 마데이라 와인은 오히려 견과류, 캐러멜 아로마와 농익은 풍미를 내며 품질이 향상되었다. 사람들은 이를 '비뉴 다 로다(Vinho da Roda)', 즉 '왕복한 와인'이라 부르며 열광하게 된다.
오늘날에는 와인을 직접 실어 적도를 통과하게 하는 것 대신 에스투파젬(Estufagem)과 칸테이로(Canteiro) 방식으로 숙성을 대신한다.
에스투파젬(Estufagem, 탱크 숙성 방식)
주로 대량으로 생산되는 중저가 라인업에 주로 사용된다. '에스투파(Estufa)'라 불리는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 와인을 넣고, 열선을 통해 온도를 45~50°C로 최소 3개월 이상 유지한다. 산화뿐 아니라 열에 의한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과 캐러멜화가 빠르게 일어나는 장점이 있다.
칸테이로(Canteiro, 배럴 숙성 방식)
고급 마데이라 와인에 사용되는 전통적 방식으로 오크통에 담아 옥상이나 창고의 햇볕이 잘 드는 다락에 보관한다. 외부의 자연 열기를 이용하는 방법. 숙성 기간은 최소 2년에서 수십 년까지 길게 진행된다. 에스투파보다 온도는 낮지만, 천천히 진행되는 산화 과정을 통해 보다 복합적이고 섬세한 아로마와 풍미를 형성한다. 숙성 기간 와인의 양이 증발하며 만들어내는 한층 더 고차원적인 맛의 레이어와 농밀함을 느낄 수 있다.

블랜디스 마데이라만의 차별점
얼마전, 블랜디스(Blandy’s)의 세일즈 디렉터인 넬슨 카라도(Nelson Calado)를 만나 마데이라 와인의 가치, 그리고 블랜디스 마데이라만의 차별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블랜디스는 단순히 마데이라 와인을 생산하는 것을 넘어, 마데이라 와인의 역사 그 자체이며 품질 표준을 정립한 상징적인 하우스. 1811년 설립된 이후 마데이라에서는 유일하게 오늘날까지도 7대에 거친 가족 경영을 이어오고 있으며 진정성과 정교함을 추구하며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블랜디스가 다른 브랜드들과 크게 차별화되는 포인트 중 하나는 중저가 라인업에서도 앞서 소개한 고가의 라인업에 주로 사용되는 양조 방식인 칸테이로 숙성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 특히 이날 넬슨 카라도를 만나 함께 테이스팅한 5년 숙성 라인업이 이 카테고리에 속해 있다. 유독 블랜디스 마데이라를 테이스팅할 때 아주 오래 숙성한 와인이 아님에도 어쩐지 좀 더 세련되고 섬세한 풍미를 느꼈다면 그건 우연이 아니다. 이것을 알아본 자신의 팔렛과 블랜디스를 선택한 ‘나’를 칭찬하도록 한다. 마데이라의 숙성 연수는 최소 숙성 기간이 아닌 병입된 와인들의 평균 연수를 뜻한다. 즉, 블랜디스 마데이라 레제르바 5년산은 칸테이로 방식을 통해 숙성된 어린 와인과 아주 장시간 숙성한 와인이 어우러져 신선함과 복합미를 동시에 느껴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블랜디스 마데이라 어떻게 마시면 더 맛있을까?

Blandy's Duke of Clarence Rich Madeira 3 Years
포트폴리오의 기본급 와인이지만 전혀 가볍지 않다. 식사와 함께라면 존재감이 더욱 돋보인다. 와인 이름에 있는 ‘리치(rich)’는 스위트한 와인임을 나타내는데 리터당 잔당이 123g이나 남아있지만 넘치는 산도로 아주 달게 느껴지지 않고 훌륭한 밸런스를 자랑한다. 꿀, 건포도, 캐러멜, 견과류, 말린 과실의 아로마와 함께 높은 알코올(19%)이 선사하는 바디감이 매력적이다. 넬슨은 이 와인은 요즘 한국에서도 유행하고 있는 대세 디저트인 플랑(flan, 커스터드 크림을 메인으로 하는 디저트)이나 잘 익은 아보카도를 반 잘라서 씨가 있던 자리에 블랜디스 마데이라를 채워 서브하면 그 자체로서 완벽한 디쉬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이 씨앗 부분에 맛간장을 살짝 채워 넣어 블랜디스 마데이라와 함께 해 보는 것 또한 추천한다. 시간이 만들어 낸 훌륭한 단짠단짠 감칠맛 폭발 아모르 파티의 순간!
Blandy’s Reserva, 5 Years Old
맘지(Malmsey)와 보알(Bual) 두 품종을 블랜딩해 만든 제품. 5년산에 이런 노블한 품종 2가지를 블랜딩을 해서 만든 건 블랜디스가 처음으로 시도했다. 마데이라 와인의 스타일에는 품종 또한 큰 역할은 하는데, 맘지는 가장 당도가 높은 스타일의 와인을 만드는 데 사용되고, 보알은 맘지보다는 상대적으로 산도가 좀 더 있으며 과실미와 매력적인 스모키한 풍미를 지닌 풀바디 와인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앞서 이야기했듯, 저연산 와인임에도 칸테이로 방식을 이용해 만들었다. 말린 과일과 토피, 오크와 정향과 바닐라, 계피와 같은 은은한 향신료가 아름답다. 120g/L의 잔당과 19%의 알코올이 풍부한 바디감을 형성하면서도 넘치는 산도 덕에 지루하지 않다. 식사의 마지막을 담당하는 순간에 다크 초콜릿, 크림 브륄레,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얹은 애플파이와 함께 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Blandy’s Sercial, 10 Years Old
세르시알(Sercial)은 마데이라에서 가장 산도가 좋은 와인을 만들 때 사용되는 품종이다. 섬 전체에 식재된 면적은 25ha밖에 되지 않는다. 주로 드라이한 스타일의 와인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블랜디스는 세르시알을 북쪽 해안선에 있는 서늘한 밭과 남쪽에서는 무려 고도 800m에 달하는 곳에서 경작을 하고 있다. 남쪽 밭의 고도는 마데이라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곳이 아니라 포르투갈 전체에서 가장 높은 고도의 밭이다. 시간이 빚어낸 아몬드, 헤이즐넛과 같은 견과류의 풍미와 함께 잔잔한 토피, 캐러멜 뉘앙스가 스친다. 잔당은 리터당 48g으로 훌륭한 산도 덕에 전혀 달지 않게 느껴진다. 짭짤한 뉘앙스가 자아내는 복합미와 긴 피니시가 인상적인 와인. 만체고 치즈나 넛츠와 같은 클래식한 페어링은 물론이며 드라이한 스타일로 식사 중 다양한 음식과 페어링이 가능하다. 인터뷰 및 테이스팅을 함께 했던 까브드뱅 브랜드 매니저의 강력한 추천은 똠얌꿍. 맵, 단, 짠, 신을 다 받아줄 수 있는 이런 페어링이 있을까 싶은 엄청난 아이디어. 굴을 이용한 요리는 물론이며 훌륭한 산도와 높은 알코올로 참치 다다키처럼 지방이 많은 어류와도 어울린다. 주꾸미볶음처럼 매운맛 또한 잔잔한 잔당으로 다 받아주는 전천후 페어링 아이템.
블랜디스 마데이라를 이용한 칵테일 레시피
마데이라는 한번 오픈을 한 이후에도 오랫동안 저장이 가능하고 때로는 요리를 할 때 소스에도 활용할 수 있고, 날이 더워지는 한여름에는 하이볼 스타일의 청량감 넘치는 칵테일 한 잔으로도 변신이 가능하다. 이날 자리를 함께한 넬슨은 저연산 마데이라(3년 숙성 또는 레인워터)와 동량의 토닉 워터를 얼음을 가득 채운 글라스 안에 넣고 오렌지 필만 살짝 비틀어 곁들여도 훌륭한 칵테일을 만들 수 있다고 이야기 했다. 또한 마데이라 와인은 항상 12~16도 사이의 약간 차가운 상태로 서브해야 가장 돋보인다고 덧붙였다. 아래 블랜디스 마데이라로 만들 수 있는 몇가지 칵테일 레시피를 첨부한다.

문의 까브드뱅
▶홈페이지 cavedevin.com
▶인스타그램 @cavedevin
글 양진원 푸드 & 와인 칼럼니스트 사진·자료 제공 까브드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