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그독에서 탄생한 그랑 크뤼급 와인, 마스 드 도마스 가삭

Written by양 진원

랑그독의 샤토 라피트

전세계인들이 보르도 그랑 크뤼를 능가하는 퀄리티의 와인이라고 극찬하는 랑그독 와인이 있다. 바로 마스 드 도마스 가삭(Mas de Daumas Gassac)이 그 주인공. 첫 빈티지가 출시된 후 얼마 되지 않은 1982년, 프랑스의 유명 미식 평론지인 <고&미요(Gault& Millau)>는 마스 드 도마스 가삭을 ‘랑그독의 샤토 라피트(Château Lafite Languedocien)’로 칭하며 전설을 예고했다. 뒤이어 세계 무대에서의 찬사가 이어졌다. <뉴욕 타임즈(The New York Times)>는 물론이며 1985년 <런던 타임즈(The Times London)>의 와인 평론가 제인 맥퀴티(Jane MacQuitty)는 "사실상 이 와인은 샤토 라투르(Château Latour)에 더 가까운 와인이다"라는 평을 하기도 했다. 직접 비교 테이스팅을 곁들이면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이 카베르네 소비뇽 품종을 주축으로 한 보르도 블랜딩 스타일의 와인을 좋아한다면, 샤토 라피트를 더 선호하건 샤토 라투르를 더 좋아하건 상관없이 마스 드 도마스 가삭을 경험해 본 순간 왜 이 와인을 설명하면서 전세계의 수많은 평론가들이 보르도 특등급의 유명 사토 이름들을 호출하게 되었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보르도가 아닌 랑그독에서 어떻게 세계 최고 수준의 와인을 만들어 내게 되었을까?’ 지역의 경계를 넘어선 수작을 만들어 낸 마스 드 도마스 가삭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앞으로의 비젼에 대해 2세대 공동 오너이자 아시아 수출 총괄을 담당하고 있는 바질 기베르(Basile GUIBERT)를 만나 들어보았다.

한국을 방문한 2세대 공동 오너이자 아시아 수출 총괄 바질 기베르(Basile GUIBERT)

랑그독에서 위대한 와인을 만든 사람들

모두가 잘 알다시피, 프랑스에서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가장 유명한 와인을 만드는 곳은 보르도다. 하지만 1970년대, 베로니크 기베르(Véronique Guibert de la Vaissière)와 그녀의 남편 에메 기베르(Aimé Guibert)는 에로(Hérault) 지역을 여행하던 중 놀라운 곳을 발견한다. 바로 오늘날 도마스 가삭의 빈야드가 위치하게 된 IGP 쌩-길렘-르-데제르(Saint-Guilhem-le-Désert)다. 유명한 랑그독의 AOC인 삑 쌩-루(Pic Saint-Loup)와 떼라세스 뒤 라작(Terrasses du Lazac)에 접해있다. 이렇게 빼어난 와인의 등급이 AOC도 아닌 IGP 등급인 이유에 대해 바질은 카베르네 소비뇽 품종 자체가 이 지역에서 AOC를 받을 수 있도록 허가되지 않은 품종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오늘날에는 프랑스에서도 많은 생산자들이 AOC에 얽매이지 않은 채 뛰어난 와인을 많이 생산하지만 과거에는 이러한 도전이 더 어려웠을 터. 하지만 그들은 위대한 도전을 시작했다. 이들의 혜안에 확신을 심어준 건 당시 보르도 3 대학의 지질학 교수였던 앙리 에잘베르(Henri Enjalbert) 교수였다. 부르고뉴와 비슷한 석회질 토양을 기반으로 다채로운 테루아적 성격을 보여주는 이곳에서 “그랑 크뤼 와인이 탄생할 것”을 예고했다. 실제로 이곳의 다양한 협곡은 시원한 바람을 끌어당겨 아주 높지 않은 고도임에도 마치 300m 이상의 고도에서 포도를 경작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바질은 덧붙였다.

마스 드 도마스 가삭의 포도밭

위대한 테루아에 걸맞는 특별한 포도 묘목 그리고 훌륭한 지휘자

포도 식재에 대한 확신을 가진 후 에잘베르와 함께 몽펠리에 대학에서 포도재배학을 담당하던 부발(Boubals) 교수의 조언에 따라, 에메는 최고 샤토들로부터 얻어낸 비클론(non-cloned) 포도나무들을 식재했다. 마스 드 도마스 가삭의 레드 와인의 중심축이 되는 카베르네 소비뇽은 샤토 오 브리옹(Château Haut-Brion), 샤토 마고(Château Margaux), 샤토 라피트 등에서,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중심축인 비오니에는 도멘 조지 베르네(Domaine Georges Vernay), 샤르도네는 도멘 꽁뜨 라퐁(Domaine Comtes Lafon), 슈냉 블랑은 도멘 위에(Domaine Huet)에서 그 뿌리가 시작된다.

1978년, 당시 샤토 마고, 오브리옹, 라 미시옹 오브리옹(La Mission Haut-Brion)등의 양조를 담당했던 전설적인 양조가 에밀 페노(Emile Peynaud) 교수가 처음으로 도마스 가삭을 방문하게 된다. 첫 빈티지부터 마스 드 도마스 가삭의 양조를 지휘한 그는, 훗날 기자들에게 ‘랑그독에서 그랑 크뤼의 탄생을 목도하는 행운을 얻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기베르 패밀리

도마스 가삭의 플레그쉽 라인업

마스 드 도마스 가삭 루즈(Mas de Daumas Gassac Rouge) 2024

품종 카베르네 소비뇽 74%, 메를로 4%, 피노 누아 2%, 프티 베르도 2%, 카베르네 프랑 2%, 기타 희귀 품종 7%(니엘루치오, 몬테풀치아노, 사페라비, 카르메네르, 템프라니요, 아부리우, 타나)

1980년대의 위대한 빈티지를 연상시키는 정교한 균형감과 생동감이 돋보이는 빈티지이다. 오랜 시간 섬세하고 느리게 침용과 발효를 거쳤고 여과는 하지 않았다. 1~7년산 오크 배럴를 다채롭게 사용하여 12~15개월 숙성했다. 12.5%의 가벼운 알코올.

짙고 투명한 루비 레드 빛을 띠며, 잘 익은 체리와 블랙 커런트의 향이 우아하게 피어오른다. 팔레트에서는 절제된 구조감 속에 붉은 과실의 순수한 에너지가 선명하게 드러나고, 실크처럼 곱게 짜인 타닌이 와인의 골격을 완성한다. 복합적인 풍미와 섬세한 층위가 지속적으로 전개되며, 깊고 긴 피니시로 뛰어난 빈티지의 품격을 보여준다.

마스 드 도마스 가삭 블랑(Mas de Daumas Gassac Blanc) 2025

품종 비오니에 35%, 샤르도네 24%, 쁘띠 망생 15%, 슈냉 블랑 10%, 뮈스카 6%, 기타 품종 10%.

샤르도네, 슈냉 블랑, 비오니에, 프티 망생이 어우러져 완성된 가삭 밸리의 와인. 화이트 와인으로서는 드물게 스킨 컨택을 통한 침용 과정을 2~3일간 거친다. 스테인리스 스틸에서 발효한 후 5개월간 숙성했다. 오크를 사용하지 않아 과실의 순수한 과실미와 꽃내음이 잘 살아있는 것이 특징. 알코올 도수는 아주 높지 않지만(13.5%) 약간의 잔당이 남아있어(4.3g/L) 더욱 볼륨감이 넘치는 고급 화이트 와인이다. 탁월한 신선함과 깊이, 복합미를 두루 갖추었으며, 이 와이너리가 '마법 같다'고 표현하는 가삭 밸리의 테루아를 가장 순수하게 담아내었다.

마스 드 도마스 가삭 블랑 & 루즈

테루아를 지키기 위한 연대, 물랑 드 가삭

1991년, 프랑스는 랑그독 와인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농부들에게 보조금을 제공하며 포도밭을 제거하는 정책을 편다. 이에 빌베이락(Villeveyrac)의 뛰어난 포도밭들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에메는 현지 포도 재배자들과 파트너십을 맺어 테루아를 보존하고 도마스 가삭의 전문성을 더한 ‘물랑 드 가삭(Moulin de Gassac) 브랜드를 런칭한다. 매해 생산하는 퀴베는 무려 24개에 달한다. 접근성이 훨씬 더 좋으면서도 각 퀴베마다 개성을 담뿍 담고 있다.

실제로 강의 때도 많이 사용하고 여러 매체에 이미 소개한 적이 있는 개인적으로 더 애정하는 퀴베들은 폴리 바이 가삭(Folie by Gassac)과 길렘(Guihem). 폴리 바이 가삭은 너무 달지도, 시지도 않은 와인을 찾는 초심자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 스파클링 와인이다. 100% 샤르도네로 만들어 잘 익은 복숭아와 감귤, 하얀 꽃과 같은 아로마와 상쾌한 산도감을 선사한다. 부라타 치즈를 올린 샐러드나 크리미한 파스타와도 잘 어울리는 잇템! 길렘 레드 와인은 시라, 그르나쉬, 까리냥을 블랜딩해 만든 와인으로 스파이시한 후추 뉘앙스와 검은 과실이 돋보이는 부드러운 타닌감을 지녔다. 와인 초심자들은 레드 와인이 때로는 너무 떫고 셔서 싫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하는데, 각종 고기와 함께 너무 떫지도 가볍지도 않은 와인을 원한다면 길렘을 추천한다.

폴리 바이 가삭 & 길렘 루즈

마스 드 도마스 가삭의 미래 아틀리에 기베르

한국을 방문한 바질과 마스 드 도마스 가삭의 과거와 오늘의 영광에 대해 이야기한 후 미래의 비전에 대해 물었다. 여기에는 아틀리에 기베르(Atelier Guibert) 이야기가 먼저 시작되었다. 기후 변화와 함께 점점 무거워지고 있는 와인에 반해 좀 더 마시기 편안한 저도주의 와인을 만드는 것이 핵심 아이디어. 시라와 까리냥, 쌩쏘를 블랜딩해 탄산 침용 방식으로 만든 퀴베 제네시스(Génésis)는 11.5% abv.의 레드 와인이다. 아직 국내에는 출시되지 않았지만 언젠가 맛보게 될 날을 기대해 본다. 화이트, 로제 와인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진지한 여름밤을 채워줄 레드 와인이 늘 필요한 법이니까.

바질은 마스 드 도마스 가삭이 점점 더 희귀한 와인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도 그럴 것이 보르도 특등급 와인들이 수백 헥타르의 밭을 소유하고 있는 것에 반해 마스 드 도마스 가삭의 포도밭은 단 14ha. 포도밭 자체가 작을뿐더러 극도로 적은 양만을 수확해 병입한다. 현재 마스 드 도마스 가삭 레인지가 될 수 있는 밭의 평균 수확량은 22~30hl/ha. 프랑스 부르고뉴 코트 도르 유수의 그랑 크뤼 밭에서 얻어지는 평균 수확량이 35hl/ha임을 감안하면 얼마나 작은 양인지 좀 더 가늠이 된다.

마스 드 도마스 가삭의 일생

인터뷰가 끝난 후 바질은 마스 드 도마스 가삭 2015년 빈티지를 선물해 주며 와인을 오픈하는 날에는 전날부터 준비를 해, 미리 코르크를 뽑았다가 다시 닫고 냉장 상태로 하룻밤을 보내게 한 후 테이스팅 할 것을 당부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그 대신 코라뱅을 이용해 약간의 와인을 글라스에 추출해서 테이스팅을 하고 있다. 글라스를 넘어 느껴지는 복합미에서 아기에서 아동기 청년기를 거쳐 성인이 되고 중년을 지나는 사람의 인생과 같이 과실기(출시 후 0~3년), 청춘기(출시 후 3~7년), 숙성기(출시 후 7~14년), 충만기(출시 후 14~21년), 꿈의 시기(출시 후 21년 이상 에이징)로 와인의 변화 과정을 묘사하는 도마스 가삭의 철학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포도 수확 후 11년의 시간을 보내 숙성기에 도달한 와인. 강렬한 아로마 인텐시티와 가죽과 철분, 숲속의 흙내음이 전하는 아로마와 아직도 상쾌한 검은 과실 뉘앙스와 잔잔한 오크 터치 또한 복합미를 이룬다. ‘프랑스에서 꽤 강렬했던 빈티지로 알려진 2015년의 랑그독 와인이 이렇게까지 산도가 좋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명징한 산도, 앞으로의 또 다른 10년도 굳게 약속할 수 있는 결이 고우면서도 탄탄한 스트럭처와 타닌이 가득한 와인. 와인의 충만기와 꿈의 시기 또한 궁금해진다. 또 한 박스 사서 묵혀봐야겠네 이거…

양진원 푸드 & 와인 칼럼니스트 사진·자료 제공 인터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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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공개일 : 2026년 06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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