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 그라츠(Bibi Graetz)의 와인메이커이자 오너인 비비 그라츠가 와이넬에서 매년 여는 ‘아트인더글라스 그랜드 테이스팅’의 1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5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지난 4월 26일(금), ‘아트인더글라스갤러리’에서 와인에 대한 철학과 와인의 변화에 대해 그와 함께 테이스팅하면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올드바인, 비비 그라츠가 와인을 만들기 시작한 이유
비비 그라츠는 2000년부터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화가였던 그는 와인 이외에 다른 프로젝트도 많았고, 와인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관심했다. 당시 2헥타르 정도 있던 가족 소유의 포도밭에서는 가족들이 마실 만큼의 와인만 생산했다. 와인 셀러엔 늘 와인이 풍족했으므로 와인 세계에 대해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고, 가족 와인을 팔 생각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근처의 키안티 클라시코에 방문했던 일을 계기로 와인메이킹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와인을 만들기로 결심한 것이 1999년, 특히 올드바인의 포도로 와인을 만드는 것에 매료되었다. 1999년~2000년경 토스카나에서는 새로운 포도밭, 새로운 클론, 고밀도의 식물을 심는 것이 유행이었고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등의 품종으로 와인을 만드는 것이 트렌드였다. 하지만 비비 그라츠는 그 반대로 클론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는 올드바인에 집중했다. 올드바인은 밀도가 낮고 각각의 포도밭은 전혀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생산성은 매우 낮았다. 그는 "올드바인은 비비 그라츠 와인메이킹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초기의 테스타마타(Testamatta)와 꼴로레(Colore) 와인은 모두 올드바인 포도로 강렬하고 파워풀한 스타일로 만들었다. 한마디로 그는 시장의 트렌드와 완전히 반대의 와인메이킹을 추구했으며, 예술가적 재능과 영감을 와인메이킹에도 아낌없이 접목시켰다. 와인병 레이블의 그림도 직접 그렸다. 한마디로 겉과 속이 모두 아트라고 말할 수 있겠다.
파워풀한 와인에서 우아한 와인
2009년은 비가 아주 많이 온 해였다. 올드바인의 포도 알갱이들은 다른 해에 비해 거대하게 컸다. 농축되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가벼웠고, 포도가 수분을 많이 머금어 와인이 투명해졌다. 버건디 와인처럼 우아한 2009 빈티지는 그렇게 탄생했다.
2009 vs 2010 와인 평론가의 점수와 소비자의 선택 괴리
비비 그라츠는 2009, 2010 빈티지를 가지고 전 세계를 누비며 와인을 소개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일이 일어났다. 2009 빈티지는 투명하면서 우아함이 특징인 와인이지만, 93점으로 와인 평론가에게는 낮은 점수를 받았고, 2010 빈티지는 고농축된 구조감 좋은 와인으로 극찬을 받으며 98점의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런데 와인 시장에서 신기한 일이 발생했다. 소비자들은 2009 빈티지를 맛보고 좋은 와인이라고 했고, 2010 빈티지는 높은 점수와 더불어 힘과 잠재력이 환상적이라고 했다. 그러고는 2010 빈티지가 아닌 2009 빈티지에 지갑을 열었다고 한다. 그는 그때 너무 충격을 받아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라고 표현했다. 당시 토스카나의 와인메이커들은 2009 빈티지가 구조감이 약했기 때문에, 2008, 2010 빈티지를 혼합하여 출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혼자서 2009 빈티지의 투명함이 아주 마음에 들었고, 다른 와인메이커처럼 블렌딩하지 않기로 스스로 결정했다.
2011년부터 우아한 와인을 목표로 양조하다
최종 소비자들의 선택과 반응을 목격한 그는 2011년부터 와인 양조 스타일을 완전히 바꿨다. 그는 '우아한 와인'이라는 새로운 컨셉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라고 한다. 지금의 와인 트렌드인 무겁지 않고 바로 마시기 좋은 와인을 10여 년 전부터 만들기로 결심했다니, 앞을 내다보는 선견지명을 가진 와인메이커라고 할 수 있겠다.
비비 그라츠는 우아한 와인을 만들기 위하여 그린 하베스트를 중단했다. 포도를 농축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뉴오크는 약 0.5% 정도 아주 적게 사용하고, 20년 이상의 오래된 배럴을 사용하여 양조한다. 배양된 효모를 사용하지 않고, 포도밭의 캐릭터를 얻기 위해 자연 발효한다. 농축하기 위한 브리딩(사혈) 방법도 이제 사용하지 않는다.
2011 빈티지부터 우아한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지만, 그가 원하는 와인에 도달하는 데 여러 해가 걸렸고, 완전히 다른 포도를 만들기 위해 모든 포도 재배 방법을 바꿔야만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원하는 "투명하고 우아한 와인을 얻을 수 있었던 진짜 첫 번째 빈티지는 2015 빈티지"라고 말했다.
2017년은 아주 더워서 포도가 좋지 않았다. 2018년은 농도는 좋았는데 수확량이 평소보다 20% 감소했고, 2019 빈티지는 대단한 빈티지로 수확량이 20% 증가했다. 따라서 2018 빈티지와 2019 빈티지 사이에 40%의 포도 수확량 차이가 있는 셈이다.
2020년, ‘테스타마타와 꼴로레’ 두 와인은 극적으로 달라졌다
2020년, 비비 그라츠는 어린 포도밭에서 테스타마타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북쪽을 향하는 산의 매우 높은 곳에 위치한 밭이었다. 이전에는 가장 좋은 포도밭의 포도는 꼴로레에 사용되었고, 그다음은 테스타마타를 만들었다. 그러나 2020년부터 생산량을 나누었다. 테스타마타는 비록 생산량이 적을지라도 고도가 매우 높으며 바람이 많이 불고, 북쪽 경사면을 향하는 포도로 생산한다. 매우 높은 산에서 생산되므로 훨씬 더 신선하고 투명하며 더 높은 산미를 가진다. 테루아의 순수함을 표현하며, 투명성은 색상에 맑고 깨끗한 뉘앙스를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테스타마타는 더욱더 붉은 과실에 집중하고 있는데, 여기서 붉은 과실은 라즈베리, 야생 체리, 덤불, 시원한 산의 과일을 의미한다. "2020년 빈티지부터 와인이 극적으로 달라졌다"라고 그는 설명했다.
반면, 모든 오래된 포도나무는 꼴로레 양조에 사용된다. 대부분의 오래된 와인들은 꼴로레라고 불린다고. 결과적으로 꼴로레와 테스타마타는 성격이 매우 다른 와인들이 되었다.
특별한 올모 빈야드
큰 차이를 만든 올모 빈야드는 그가 2020년에 임대하기 시작한 정말 특별한 포도원이다. 고도는 420미터이고, 항상 바람이 분다. 그래서 와인은 마치 '산악 와인'인 것 같다. 그는 올모 빈야드를 "토스카나에 있는 느낌이 아니라, 알프스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라고 표현했다. 이탈리아의 북쪽에 있는 스위스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하니 독특하고 특별한 빈야드가 아닐 수 없다. 바람이 많이 부는 올모 빈야드는 믿을 수 없는 산도가 큰 특징이다. 꼴로레, 테스타마타에 매우 좋은 산도를 전달하며, 아주 풍부하고 돌과 석회암이 섞인 점토질의 좋은 토양이다.
2021 & 2022 빈티지
2021 빈티지는 좀 더 구조감을 얻길 원해서 남쪽을 향하고 있다. 그래서 2020 빈티지는 2021 빈티지에 비해 좀 더 가볍고, 2021 빈티지는 좀 더 구조감이 있다. 다가올 2022 빈티지에선 좀 더 가볍고, 강렬한 와인을 추구할 것이라 한다. 비비 그라츠에 의하면 2022 빈티지는 현재 블랜딩 중에 있는데, "강렬한 방식으로 붉은 과실에 100% 집중되어 있고, 정말 특별한 와인이 될 것"이라고.
질리오섬 화이트 품종 안소니카
비비는 질리오섬에서 토착 품종 안소니카 품종으로 화이트 와인을 만든다. 화강암과 모래로 이루어진 가파른 언덕 위, 파란 바다가 내다보이는 눈부신 포도밭이다. 모든 포도는 손으로 수확한다. 그는 비비 그라츠 인스타그램 속의 영상을 보여주면서 질리오섬의 포도 농사에 대해 설명했다. 가파른 언덕의 바위 덩어리 사이에서 포도를 수확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그는 질리오섬의 안소니카 품종으로 만든 비앙코는 아주 특별한 테루아에서 온 특별한 와인이고, 와인의 성격이 아주 강하고 아주 오래되었다고 설명했다. 테스타마타 비앙코 2019 빈티지를 테이스팅하였는데, 짙은 골드 컬러가 눈길을 끌며 허니서클과 꿀의 달콤함과 자스민의 아로마 그리고 미네랄과 밸런스가 훌륭한 화이트 와인이었다. 질리오섬의 척박한 절벽 아래에서 어렵게 포도를 수확하는 모습을 보며 와인을 마시니 한 모금 한 모금이 소중히 느껴졌다. 평균 연령 100년 이상의 올드바인으로 만들어진 와인으로 연간 700병만 한정 생산하는 귀한 와인이다.
와인을 만든 와인메이커에게 와인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것은 정말 감동적인 순간이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예술와 와인메이킹 둘 중에서 뭐가 더 어려운지 물어보았다. 그의 대답은 예측한 답과 달리 와인을 만드는 것이 쉽다고 말했다. 예술은 더욱 크레이지한 창조가 필요하니 그의 말이 이해가 갔다. 와인을 예술처럼 학문으로 배우지도 않고 자신만의 양조법으로 남들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과감한 도전장을 내민, 그의 와인 테스타마타(Crazy Head) 이름과 일맥상통하는 크레이지함과 열정이 지금의 비비 그라츠 와인의 성공 열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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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배준원 사진·자료 제공 (주)와이넬